"눈에 흙이 들어가도 보상을 받아야겠습니다.힘을 합쳐서 손해배상을 받아냅시다"


21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일본의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제2회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에서 북한의 리순옥(78) 할머니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대회 2일차에 마련된 일제 피해자들의 피해 증언 순서에서였다.



황해북도 신평군이 고향인 리 할머니는 17살이던 1943년 동네 친구 2명과 함께평안남도 순천 부근의 산골짜기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종용당했다.


13살 때 어머니와 사별한 뒤 아버지마저 일본군에 의해 보국대로 끌려가면서 언니, 오빠와 헤어져 구장집에 `아이보개'로 들어갔다가 `돈 많이 벌어보지 않겠느냐'는 꾀임에 따라간 게 화근이었고, 이후 1년여간 악몽 같은 생활을 견뎌야했다.


리 할머니는 "돈 벌러 간다고 해놓고 노리개로 만드는 그런 군대가 세상에 또어디 있느냐"고 울먹이며 "동지들을 대표해 여기 왔는데 일본인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한테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또 "당신네들은 아들, 딸 낳고 잘 살지 않느냐"며 "난 조그만할 때 가서 (이런 일 겪고 난 뒤) 너무 무서워서 그 뒤로 남자는 영 상대도 않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전주사범학교 5학년이던 1944년 9월 일본군에 징집돼 히로시마(廣島)에서 간부훈련을 받던 중 원자폭탄에 피폭된 곽귀훈(80) 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회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삼중고의 피해자"라며 "우선 강제로 연행돼 갔고 원폭에 피폭된데다 죽을 때까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 끝에 적으나마 보상을 받아낸 성과를 소개하면서 "남한과 미국, 브라질의 피폭자들은 대부분 해결이 됐는데 문제는 북한 쪽 인민공화국의 2천명 가까운 피폭자들"이라며 "하루 속히 실상을 파악하고 일본 정부가 피해보상에 나서도록 다그쳐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난징(南京)대학살 피해자인 지앙젠푸(姜根福.74) 할아버지는 대학살 당시 작은누이가 일본군 칼에 죽고 어머니가 총탄에 맞아 숨졌으며 젖먹이 남동생이 땅에 내팽겨쳐져 숨을 거두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뒤 어렵게 살아온 사연을 소개했다.


이미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는 대만의 위안부 루만메이(盧滿妹.79) 할머니는 "왜 난 내 청춘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면서 "일본을 상대로 한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필리핀의 위안부 암모니타 발라자디아(76) 할머니는 "국제사회는 일본 군대의극악성을 알아야만 하며 위안부로 완곡하게 알려진 전시 성노예로서의 우리 얘기를들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범죄행위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증언 뒤에는 남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증언자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