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라는 사상 초유의 `난제'를 떠안은 지 두달여만 14일 역사적 결정을 내리고 탄핵정국을 마무리했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빚어진 국론분열과 대통령 권한정지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온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헌재에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만큼 국가적문제를 몸소 해결한 재판관들의 면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판장인 윤영철 헌재소장을 포함,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는 `법조경력 15년 이상, 40세 이상으로 법관을 자격을 가진 자'라는 자격기준이 말해주듯이 오랜 공직생활을 거쳐 소신을 다져 온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윤 소장과 이번 사건에서 주심을 맡은 주선회 재판관, 송인준 재판관은 김대중전 대통령이 재직시 임명한 재판관이며, 김영일,김경일,전효숙 재판관은 최종영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다. 국회 선출 인사 가운데 권성.이상경 재판관은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추천을받았으며 김효종 재판관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동추천으로 선출됐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맡은 재판관 9명중 노 대통령이 지명한인사는 없지만 전효숙.이상경 재판관은 노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았다. 검사 출신인 송인준.주선회 재판관을 제외하면 모두 판사 출신이며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충청지역 출신이 각각 3명씩이고 영남이 2명, 서울 출신이 1명이다. ▲윤영철 헌재소장(67.전북 순창.고시 11회) =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의 손녀사위로서 법조인 집안의 오랜 내력을 이어오고 있다. 94년 대법관을 마지막으로 재조에서 퇴임한 뒤 개인사무실을 냈고 97년부터 김.장.리 공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다 2000년 헌재소장으로 임명됐다. 변호사 시절인 99년 8월 대법원장 인선 때 하마평에 오르내렸고 실제로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했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6공 당시 `경찰의 불법유치 관행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에서 국가배상 판결을 내렸고, 법관이 행정업무를 직접 총괄하지않아 근무를 기피해 온 법원행정처 법정국장으로 처음 임명되기도 했다. 헌법재판관 으로서는 80년대 신군부의 동아방송 주식강제 양도사건과 관련, 동아일보가 지난 2001년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언론통폐합 조치는 언론자유를 침해했으므로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바 있다. ▲김영일 재판관(64.서울.사시 5회)= 70년 대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98년 부산지법원장을 역임했으며 99년 헌재 재판관에 임명됐다. 별명은 사법대학원동기들이 붙여준 대법원 판사. 대학 졸업 때까지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고학하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걸어서 통학하기도 할만큼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95년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 시절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및 12.12, 5.18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을 진행했으며 배석판사들에게 불필요한 외부접촉을 삼가도록 당부할만큼 원칙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2001년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을 규정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때 주심을 맡았다. ▲권성 재판관(63.충남 연기.사시 8회) = 69년 부산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대법원 수석사법정책 연구심의관을 지냈으며 청주지법원장과 행정법원장을 역임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절친한 경기고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95년서울고법 형사부장으 로서 전.노 비자금 및 12.12, 5.18 내란음모 사건의 항소심을맡았다. 판결문에 한시(漢詩)를 인용할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으며 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배소에서 `신원권(伸寃權.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 개념을 창안,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00년 7월 대법원 정기인사에서 용퇴한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명지대 석좌교수직을 택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김효종 재판관(61.충남 조치원.사시 8회) = 서울지법원장이던 2000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동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친화력 있는 성품과 서민들 얘기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온정어린 재판진행으로 판사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다. 또 대법원장 이.취임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아 최종영 대법 원장 체제가 원만히 출범하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헌법재판관으로는 재작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무기수인 조모씨가 낸 `준법서약제'관련 헌법소원에서 "개인의 세계관 변경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준법서약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바 있다. 또 작년 4월 민사소송 등에서 판결 시 연 25%의 연체이율이 가능토록 한 `소송촉진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사건의 주심을맡았다. ▲김경일 재판관(60.광주.사시 8회) = 수원지법원장이던 2000년 임명됐으며 소탈하고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발언관련 헌법소원 각하 결정에서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시절인 95년 3월 이전에 부상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산업재해 인정을 금지한 `산업기술연수생 보호.관리 지침'에 대해 무효판결을 내렸다. 2001년 간통제 합헌, 2002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누범자에 사형을 내릴수 있게 한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릴 당시 주심을 맡았다. ▲송인준 재판관(60.대전.사시 10회) = 71년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99년 대구고검장까지 지낸 정통 검사출신 재판관으로 지난 2000년 임명됐다. 검사시절 주로 형사부서에 근무하면서 집행업무 합리화와 검찰의 대민 서비스질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또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는보스형이면서 시집을 펴낸 검사로도 유명하다. 99년에는 대전지검장으로 법조비리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작년 5월 국보법상 회합.통신 조항이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헌법소원 사건에서 주심을 맡아 "해당 조항은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치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경우'로 한정해 적용하는 한 모호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의견을 냈다. ▲주선회 재판관(58.경남 함안.사시 10회) = 대검 감찰부장과 공안부장을 역임한 정통 검사 출신으로 2001년 헌재 재판관에 임명돼 이번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맡았다. 제5기 한총련 간부 전원에게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죄를 적용, 한총련 해제작업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오익제 편지사건 등 민감한 공안사건을 많이 맡았다. 2001년 7월 민주당이 날치기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제기한 권한심판 청구 사건에서 선고 전 국회 정상화로 한나라당이 소를 취하했으나 권성 재판관과 함께 `날치기는 법적무효'라는 견해를 냈었다. 10월 외교기관 청사 경계지점에서 100m 이내의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관련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릴 당시 주심이었다. ▲전효숙 재판관(53.전남 승주.사시 17회) = 99년 여성으로 두번 째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한 데 이어 작년 2월에는 최초로 여성 형사부장에 임명됐고 같은해 8월에는 첫 여성 헌재 재판관이 됐다. 97년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면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98년에느 부실경영으로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은행장과 임원 등에게 400억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같은해 여성의 법적 지위향상을 위해 서울지법 안에 여성법 연구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상경 재판관(59.경북 성주.사시 10회) = 올 2월 재판관으로 임명됐으며 강직한 성품이면서도 내면적으로 온화하고 구성원간의 인화를 중요시하는 법관으로 통한다. 빈틈없고 깔끔한 재판을 진행한다는 평을 받았으며 특허법원 개원시 수석부장을역임, 특허법원의 기초를 닦았다. 민법개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민법 개정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조세법 분야에도 정통해 `지적재산권소송법' 등 저서와 많은논문을 저술했다. (서울=연합뉴스) 안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