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분기 결산을 앞두고 `연체와의 전쟁'에 돌입한은행권이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있다. 채무자들 사이에서 아예 "배드뱅크로 빨리 넘겨 달라"거나 "더 좋은 대책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다시 만연되면서 휴일근무까지 마다 않고연체 회수에 나선 은행원들의 전의를 여지없이 꺾어 놓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하나.신한.조흥 등 주요 시중은행에서 연체 관리를 전담하는 가계신용센터 직원들은 지난 10일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 발표 이후빚갚기를 거부한 채 `버티기'를 시도하는 채무자들이 속속 늘어나 채권 회수와 연체관리에 적잖은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1.4분기 결산을 앞두고 3월 중 연체율 감축 목표까지 세워 놓은 각 영업점직원들은 목표를 채우지 못할까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A은행 가계신용센터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 일부 기관의 원리금 대폭 감면 발표직후처럼 단기 연체가 급증하고 채권 회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일단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은행으로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B은행 연체관리팀장은 "배드뱅크니 개인워크아웃이니 다양한 신용불량자 대책이쏟아지자 일부 채무자는 `빨리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달라', `남들처럼 나도 원리금을 깎아 달라', `상환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니까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는등 배짱으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C은행 강남 지역 지점장은 "각양각색의 대책이 봇물처럼 나오면서 채무자들 사이에 내용도 정확히 모른 채 너도 나도 `기다리자'는 풍조가 팽배해 있다"고 밝히고"3월은 분기의 마지막 달이라 연체율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 문제"라며 혀를 찼다. D은행 가계신용센터장은 취업하지 못한 20대 신용불량자의 예를 들며 "은행들이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취직이 되면 돈을 갚겠다고 태연하게 말하더라"며 허탈해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대책 발표 이후 정상적으로 이자를 내던 채무자들까지 영향을 받아 빚을 갚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은행 관계자는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구제해 준다는 인식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지적하고 "그나마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의 상환 의지를꺾어 놓고 있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정부와 금융 당국이 최근 불법 추심 근절을 지시하는 등 신용불량자들을대상으로 강도(?) 높은 빚독촉을 못하도록 분위기를 잡고 있는 점도 채무자들의 버티기를 부추기고 은행권의 연체 관리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도덕적 해이가 만연되고 있는 데에는 정부가 지나치게 조급증을 갖고 `배드뱅크 설립',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등 아직 숙성되지도 않은 대책을 마구 쏟아낸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또 이미 자체 신용불량자 프로그램을 시행 중인 각 은행에 마치 새로운 대책인것처럼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이번 주말까지 `답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관치금융'적 접근이 오히려 전시성 대책을 양산하고 도덕적 해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공언한대로 은행권 자율에 맡기려면 확실히 맡겨야지, 신용 회복 지원과 일자리 지원 실적까지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행정"이라고 꼬집고 "신용불량자 문제는 무대책이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특히 전날 배드뱅크 설립자문사인 LG투자증권과 은행연합회 등이 배드뱅크 구제 기준을 제시하면서 불과 원금의 3%만 갚으면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주고상환 약정을 1년간만 이행하면 원리금도 깎아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버티기 풍조를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