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 중 한국을 다녀 온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야마구치현 농장주) 79년만의 조류 독감으로 야마구치현에서 6천마리의 닭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일본의 13일자 조간신문에는 한국 경계경보가 가득했다. 상당수 신문은 조류독감이 한발 먼저 휩쓸고 간 한국의 피해 상황을 상세히 전하는 한편 일본의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감염 경로 파악과 범 정부차원의 방역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신문은 한국의 조류독감 발생 후 일본양계협회가 농민들에게 불요불급한 한국 출장을 자제토록 요청했고 한국과 인접한 현에서는 닭 샘플 검사를 전문기관에 의뢰 중이었는데 변을 당했다며 허탈해 하는 농가의 표정까지 곁들였다. 언론은 이번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한국을 덮친 것과 같은 부류의 H5형이지만 인체 감염 우려는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원인 규명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철새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조류독감 뉴스에 보이는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수많은 축산 농가들이 광우병으로 2년전 감당키 어려운 상처를 입었던 데다 최근에는 광우병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까지 수입이 전면 중단되는 등 먹거리 관련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다. 유해 농약이 대량 살포된 중국산 수입 농산물이 일본 가정을 바짝 긴장시킨 적도 있어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어디 있느냐"며 여론이 들끓고 있을 정도다. 일본 농가에 한국 경계경보가 발령된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가볍지 않다. 대일 수출의 효자품목으로 각광받았던 한국산 돈육이 돼지 콜레라가 발생한 지난 2000년 초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숙원 과제로 안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농수축산물은 그래도 일본과의 수지 격차를 좁혀주는 우등 수출품이다. 그러나 조류독감은 한국 축산 농가에 기습 펀치를 날린 후 일본인들의 뇌리에 가해자 이미지를 심어 놓고 있다. 한 신문은 한국산 닭과 오리고기의 수입량이 한해 약 1천5백t에 달했으나 조류독감 발생후 올스톱됐다고 전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