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관광객 133명을 포함해 148명의 희생자를 낸 이집트 전세기 추락사고가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조치부실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집트 주무부서인 민간항공부는 3일 사고 직후 관광산업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우려해 기체고장이 추락 원인일 것이라고 서둘러 발표했다. 구조작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아흐마드 샤피크 민항부 장관은 사고 여객기가추락 직전 기체가 흔들리며 좌우로 기수를 바꾼 사실을 지적, 조종사가 해결할 수없는 기술적 결함이 발생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일부 서방언론이 추측보도한 테러에 의한 추락 가능성을 단호히 부인했다. 민항부나 사고 여객기 운영회사인 플래시 에어측은 전세기가 이륙 직전 정상적인 정비를 받았으며 기체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종사들도 5천시간 이상 비행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플래시 에어측은 보유항공기들이 노르웨이에서 정기 점검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의 플래시 에어 전세기가 2002년 10월부터 1년 이상 스위스 공항과영공 이용이 금지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전조치 미비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플래시 에어가 보유하고 있는 보잉 737-300기 2대 가운데 한대가 스위스 당국의불시 점검에서 치명적 결함을 보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더욱이 플래시 에어의 전세기들 가운데 한대가 같은 시기 아테네 공항에 비상착륙했던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스위스 연방민항국에 따르면 문제의 전세기는 스위스 당국의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파리로 비행하던 중 기상악화로 제네바 공항에 비상착륙하기도 했다. 스위스 당국은 문제의 여객기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자 관련 보고서를 이집트 정부에 제출했지만 이집트측으로부터 1년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샤피크 장관은 이와 관련, "증거가 있다면 이를 제출해야 할 것"이라며 스위스정부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여객기의 변속장치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고, 추락 당시 고도가 너무 낮아 조종사가 회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추정했다. 프랑스 정부는 특별 조사단을 사고 해역에 파견해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에 착수했지만 추락원인을 밝혀줄 블랙 박스를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로선 전기고장에 의한 추락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플래시 에어 전세기를 정비한 노르웨이 항공사도 사고기가 13개월 전 대대적 점검을 받은 뒤 상태가 양호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집트 민항부 관리들은 자국내 민간 항공사들이 보유한 여객기들에 대해 국제규정에 따라 정기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항공기가 기술적으로 문제가없고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문제의 전세기가 테러에 의해 추락했을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샤름 엘-셰이크 주변지역의 목격자들은 여객기가 바다에 추락하기 전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구조대원들도 발견된 기체 잔해에 불에 탄 흔적이 없다며 폭발에 의한 추락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 이집트 당국과 전문가들도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지난 6년여간 깊은 침체에 빠졌던 이집트 관광산업이 모처럼 회생 조짐을보이고 있는 시기에 대형 항공 참사가 발생하자 이집트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집트 당국은 테러 관련성을 강력히 부인하고 기술적 결함에 의한 추락임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곧 정비 불량 등 안전 점검 부실을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이래저래 고민이 크다. 프랑스 정부도 사고원인이 밝혀지는대로 항공사와 정비회사 등 관련 당사자들의 책임소재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추락사고 후 아직은 샤름 엘-셰이크의 여행사나 호텔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카이로의 일부 여행사들은 관광 성수기에 발생한 항공기 추락 참사로 무더기 예약취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