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자신의 신용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서 남의 신용을 빌리는 경우가 있다. 추천서를 받는 것이 좋은 예이다.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하다. 역사가 짧은 기업들은 충분한 실적을 갖고 있지 못해 그 회사의 신용만으로는 투자자를 유치하기가 어렵다.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 역시 모든 기업에 대해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시장에서 충분한 신용을 축적한 누군가가 회사의 신용을 뒷받침한다면 회사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신뢰 정보를 바탕으로 안심하고 투자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이러한 필요에 따라 등장한 것이 명성중개인(Reputational Intermediary)이다. 다소 어색한 표현이기는 하지만,오랜 기간 동안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자본시장에서 확고한 신용을 얻은 전문가 집단을 말한다. 명망 있는 유수의 투자은행이나 회계법인,법률사무소 등이 이에 속한다. 명성중개인들은 시장에서 날이 갈수록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보통 회사의 기술력이나 영업 내용, 나아가 경영자에 관해 잘 알지 못하지만,자신이 신뢰하는 유수의 투자은행이 그 회사의 주간사라면 신뢰를 보낸다. 또 특정회사의 회계처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간단치 않지만,자신이 신뢰하는 회계법인이 그 회사의 회계를 감사한 결과 적정하게 처리됐다고 밝히고 있다면 투자자는 이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법률의견을 낸 법률사무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명성중개인들은 이른바 '간판을 걸고' 그들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섣불리 진실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기업을 편들거나 옹호하지는 않는다. 명성중개인들은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기업 구성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을 사실상 업그레이드시키는 역할도 한다. 다국적 투자은행과 외국 증권시장 동시상장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회사의 임직원 전부가 한 단계 높아진 기준으로 무장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이렇게 역할이 커지고 있는명성중개인들이지만 '추천서'를 써주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자본시장에 그런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는 물론 공시제도가 있어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생산 유통되도록 감독기관이 감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 권한을 무한정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감독 당국의 감독을 강화하는 것 보다는 명성중개인들에 큰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에 대한 윤리적 규제를 강화해 보다 자율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고,투자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 제공되는 각종 정보의 준비과정에 명성중개인들이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아울러 명성중개인들에게 그 정보의 정확성에 관해 책임을 지게 한다면,당국의 감독부담을 줄이면서도 투자자를 보호하고,시장을 투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성중개인 제도는 이미 선진 시장에서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우리도 최근들어 제도 도입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IMF 위기를 넘기면서 우리 기업의 CEO나 고위경영자들도 의사결정을 할 때 '변호사 의견을 들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명성중개인들이 제도적으로 정보제공 과정에 관여하고,그래서 투자자들이 '모 증권회사가 주간사인 IPO가 위험한 것일 리 없다' '모 회계법인이 감사를 했다면 그 회사의 회계서류는 철석같이 믿어도 된다'는 식의 건전한 투자 분위기가 생겨났으면 한다. 어차피 우리는 동북아에서 중국이라는 거인과 하드웨어로는 경쟁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소프트웨어는 윤리성의 뒷받침을 받는 신용과 전문성이다. 신뢰 받는 전문가 그룹을 육성해서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게 하고 글로벌 시장에 수출도 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명성중개인들도 분발해야 하겠다. crwoo@wooy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