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가 '보물찾기'에 나선다. 가치는 5천억∼6천억원. 찾는 사람은 진로노조가 아닌 법정관리인인 이원씨며 찾는 물건은 진로재팬의 전체 주식(4천주·주당 액면가격 5만엔)이다. 찾는 방법은 서울지방법원을 통한 민사소송. 진로가 이기면 거대 자산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 반면 진로재팬의 최대 채권자인 골드만삭스측에는 악몽이 된다. 골드만삭스는 채권 행사로 진로재팬을 압류한 상태로 주권이 진로에 넘어가면 그야말로 껍데기만 쥐게 된다. ◆소송 내용=진로는 지난 9일 서울지방법원에 진로재팬에 대한 주주권 확인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로재팬을 상대로 냈다. 이번 소송은 법정관리인이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그동안 진로노조 등이 낸 여러 소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법무법인 바른법률을 통해 낸 소장에서 이원 법정관리인은 진로재팬 주식 소유권이 진로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리인은 "액면가로 따지면 2억엔밖에 안되지만 향후 가치를 감안하면 5천억원에서 6천억원에 달하는 큰 소송"이라고 말했다. 소장에 따르면 진로는 88년 10월 진로소주를 일본에서 팔기 위해 도쿄에 진로재팬 법인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 1억엔과 90년 2월 1억엔 증자를 포함해 총 2억엔을 출자했다. 올해 매출목표액은 3천억원이다. 문제는 92년 이후부터 생겨났다. 장진호 전 회장 등 구 경영진이 진로인터내셔널과 진로홍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주식이 이리 저리 옮겨다녔다. 진로인터내셔널은 진로홍콩을 만들기 위해 세운 법인. 구 경영진은 진로 서울본사에서 진로재팬을 지배하는 것보다 홍콩에서 관리(일본쪽 자금관리 등)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해 진로홍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자금을 이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 주식은 진로의 부도와 화의 개시,잦은 경영진 교체 등으로 잊혀졌다. 그러던 중 이번 법정관리 와중에 이 관리인이 진로재팬의 주식이 정당한 절차 없이 진로홍콩 소유로 바뀌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관리인은 "소장에서도 밝혔지만 주식양도는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할 뿐 아니라 서면으로 양도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면서 "그러나 진로재팬 주식은 이러한 절차 없이 엉터리로 진로홍콩에 넘어갔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정관상 주식 양도는 반드시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돼 있다"며 "이런 경우 승인 없는 양도는 무효가 된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의 악몽=이번 소송은 골드만삭스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진로홍콩 소유라고 믿었던 진로재팬 주식이 1백% 진로에 넘어가면 골드만삭스는 껍데기만 쥐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골드만삭스는 진로 본사 부도 이후 어려워진 진로홍콩을 공략하기 위해 진로홍콩이 발행했던 변동금리채권(FRN)을 헐값으로 사모았다. 공격 당시 골드만삭스는 진로홍콩이 진로재팬의 주식 1백%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진로홍콩을 공격하면 진로재팬까지 삼킬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진로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경우 진로재팬의 가치는 5천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당시 나왔었다. 골드만삭스는 계획에 따라 진로홍콩의 최대 채권자가 된 뒤 진로홍콩에 대해 파산을 신청했다. 이어 진로재팬에 대해서도 진로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상표권을 가압류했다. 진로홍콩과 진로재팬을 한꺼번에 골드만삭스의 발 아래 둔 것. 하지만 이번 소송으로 투자 목적이 뒤틀릴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이같은 사실을 알고 진로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도 들리는 상황이다. ◆전망=민사소송은 해봐야 알겠지만 이 관리인은 진로 재산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는 "홍콩파산법원이 주권 양도를 요구하고 있지만 양도 과정이 명백해 진로재팬이 주식 명의를 진로로 바꾸는(개서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홍콩법원과 한국법원,진로와 골드만삭스간의 국제소송으로 번질 공산도 크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