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중소기업계에 '크리베이션(Crevation)'이란 용어가 유행이다. 이 용어는 기술개발 업체인 산요기기가 사내 혁신운동의 이름을 크리베이션으로 정하면서부터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리베이션이란 '창조'를 뜻하는 크리에이션과 '혁신'을 의미하는 이노베이션을 조합해 만든 말이다. 보통 기업들이 혁신운동을 전개할 때는 회사 전체 차원에서 이를 추진한다. 그러나 종업원 1백80명의 중소기업인 산요기기는 '사원은 창조를 하고 기업은 혁신을 하자'는 의도에서 크리베이션이라는 사훈을 도입, 실천해 왔다. 이 회사의 야노 게이이치 사장은 7년 전 기계업체에서 기술과 과장으로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기술을 무시하는 기업에 뼈저린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기술혁신 기업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기술뿐이었다. 기술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장 없는 제조업체'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야노 사장은 함께 쫓겨난 직원들과 기술혁신을 강조하는 무공장 시작품(試作品) 제조업체를 차렸다. 산요기기는 혁신을 강조하지만 연구개발(R&D) 부문에 자사의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R&D 비용을 주문 업체로부터 먼저 지급받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혁신방법은 독특하다. 회사 2층 계단 옆에는 '싱킹룸'이라는 방이 하나 있다. 이 룸엔 전화나 컴퓨터 등 통신기기가 일절 없다.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다. 덕분에 여기에서는 외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사장이 불러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곳에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창의적인 발상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원들의 창의력을 존중하다 보니 산요기기는 일본에서도 최첨단 기술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드디어 크리베이션이란 용어는 중소기업 혁신운동의 새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다. 이 크리베이션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에도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크리베이션을 하려면 먼저 회사 내에 전략혁신 부서를 둬야 한다. 이 전략혁신 부서는 단지 기획안을 만들거나 건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능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제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중소기업도 외국기업과 어깨를 겨뤄야 하기 때문이다. 국외 경쟁사의 신제품과 신사업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국외 경쟁사의 주기적 동향보고 시스템 △국내 경쟁사의 시장점유율 분석 △잠재적 경쟁 상대의 출현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고객의 충성도를 조사해 봐야 한다. 그러나 혁신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미래를 내다보고 스스로를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아직은 매출 규모가 작은 기업도 이노베이션으로 성장 가도에 올라설 수 있다. 경쟁사를 대상으로 벤치마킹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한 단계 높여 달리 생각하고 다르게 전략을 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은 남다른 전략으로 시장을 확보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10개 기업을 2003년도 우수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들 10개 기업 가운데는 그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기업이 있는가 하면 참신한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창출해낸 기업도 있다. 특히 우리기술은 가정용 로봇과 디지털가전 분야에서 혁신을 이룩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혁신기업에 선정됐다. 우진세렉스는 끊임없는 기술개발 투자로 플라스틱 사출성형기계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 우수기업으로 뽑혔다. JM글로벌은 산소공기청정기 등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왔다. 피케이엘은 반도체생산 공정에 필요한 포토마스크에서 앞선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목재업체인 동화기업은 목재 부문에서 혁신적인 신규 아이템을 줄곧 창출, 소비자들로부터 호응받고 있다. 지금까지 초고속 정보통신망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하이퍼정보통신은 최근 혁신적인 위치추적시스템(GPS)을 개발하고 신규 시장에 진출한다. 카네기연구소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의식혁신 교육을 국내에서 잘하는 기업으로 뽑혔다. 씨아이정보기술은 그 동안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중국 및 러시아 시장에서 수출 주문을 받으면서 재도약하기 시작했다. ㈜혼은 고객 니즈에 맞춘 디자인으로 패션주얼리 업계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이화공영은 건설업체이면서도 안정적인 경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코스닥 기업이다. ----------------------------------------------------------------- < 7대 이노베이션전략 > 1. 혁신은 사장이 하는 것이다. 2. 지난해 매출은 잊어버리자. 3. 예정된 미래는 없다. 4. 전략 혁신팀을 만들자. 5. 이노베이션은 상식이 아니다 6. 회의는 일어서서 하자. 7. 혁신은 오늘부터 실행한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