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55)이 4일 새벽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 12층 집무실에서 투신 자살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다섯째 아들로 현대그룹의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정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현대그룹 경영과 남북경협 사업이 중대 기로를 맞게 됐다. 정 회장이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던 대북송금 의혹 및 현대 비자금 사건도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졌다. 정 회장의 시신은 이날 오전 5시50분께 서울 종로구 계동 140의 2 현대 본사 사옥 뒤편 주차장 앞 화단에서 사옥 청소원 윤창규씨(63)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 경직도 등을 고려할 때 정 회장이 이날 새벽 1∼2시쯤 투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검을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정 회장의 사인을 추락사로 추정했다. 정 회장이 자살한 배경은 분명치 않지만 계열사들의 잇따른 경영난과 대북송금 및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주변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정 회장의 유서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1장, 부인과 자녀들에게 2장, 겉봉에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봉투에 1장 등 모두 A4 용지 4장으로 3통의 봉투에 나뉘어 넣어져 있었다. 김 사장에게 남긴 유서에서는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란다"고 주문했고, 부인에게 남긴 유서에서는 "나의 유분(遺粉ㆍ뼛가루)을 금강산에 뿌려달라"고 강조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또 다른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자탄의 글이 실려 있었다. 계동 사옥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는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과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등 형제들이 비보를 듣고 아침 일찍 달려왔으며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 등 친인척들도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동한 채 빈소를 지켰다. 고건 국무총리, 정대철 민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각중 경방 회장을 비롯해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박용오 두산 회장 등 정ㆍ관ㆍ재계의 조문 행렬도 줄을 이었다. 현대그룹은 이날 오후 아산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 회장의 장례식은 현대아산 회사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발인은 오는 8일 오전 7시, 영결식은 오전 8시에 각각 서울 아산병원에서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가족회의에서 장지는 경기도 하남 선영으로 결정됐으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품 등을 금강산으로 모실 예정"이라며 "북측과의 협의가 필요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일훈ㆍ장경영ㆍ김현석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