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이 김윤규 사장에게 남긴 유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김 사장과 현대가(家)와의 2대에 걸친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정 회장이 김 사장을 '누구보다 진실한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현대그룹의 성장기에 주춧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창기부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도와 대북사업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세칭 '왕자의 난'과 대북사업의 실패 등 정 회장의 인생역전 와중에서도 다른 가신(家臣)들과 달리 등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정 회장의 곁을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유서에서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 저희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라고 한 것도 김 사장이 '정 명예회장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대북사업의 실무총책을 맡아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한데 대한 마지막 감사의 표시로 해석된다. 김 사장은 지난 89년 1월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 방북길에 실무진으로 따라나서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 체결을 도운 현대 대북사업의 산 증인. 98년에도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으로 남북경협사업을 재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현대건설 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현대아산 대표직을 유지하며 북한과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도맡아왔다. 정 회장이 유서에서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 고치세요'라고 언급한 것도 1988년 리비아 발전소 입찰상담을 위해 출장을 떠났다가 여객기가 트리폴리 공항에서 추락하면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김 사장은 사고 비행기의 동체가 완전 파괴되면서 70여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지금도 한 쪽 눈 주변 근육이 떨리는 불편을 겪고 있다. 그는 리비아 전력청 장관을 만나기 위해 하루만에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와 입찰상담을 해 수주에 성공했다. 결국 정 회장 자살과 함께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끝맺은 정 회장의 부탁은 고인의 유지(遺志)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