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머리말 오늘 아침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밀레니엄포럼에서 "향후 금융감독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함. 최근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SK글로벌 분식회계,카드채 문제 등이 표면화되고,이들이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시장안정에 부담을 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음. 이에 따라 경기회복,구조조정,시장안정이라는 각기 다른 정책목표와 수단들 속에서 금융감독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음. 오늘 이 자리에서는,최근의 경제여건 변화와 그간 추진된 금융구조조정을 간단히 평가해 본 뒤,향후 금융감독정책 방향을 살펴보고자 함. 최근의 경제여건 변화 세계경제는 이라크전쟁이 조기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주요국의 소비 및 투자 회복 지연,추가 테러 가능성 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경기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임. 선진국,특히 미국의 소비자심리가 회복되고는 있으나 아직 생산,투자,고용 등 주요 실물경제변수가 부진한 가운데,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의 우려 속에서 이라크전쟁에 따른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경상수지 적자 등이 경기회복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우리경제는 세계경제의 조기 회복 지연,북핵위기,사스여파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 작년에 경기를 지탱해 온 소비가 투자와 함께 위축세를 보이는 가운데,동아시아의 사스여파로 그 동안 경제성장을 지탱해 오던 수출 호조세도 둔화되고 있는 실정임. 여기에다 우리 경제는 당분간 북핵문제 등경제 외적인 변수도 있어 조기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임. 이와 같이 어려운 경제여건 하에서,금융감독당국은 정도와 원칙에 의거하여 감독정책을 수행해 나갈 것이나,정책시행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거나 또는 실물부문에 타격을 주는 등 체제적 위험(systemic risk)에도 사전에 대비해 나갈 것 임. 특히,경기침체기에는 금융부실 및 시장불안정 요인이 급속히 확산되는 경향이 있으므로,금융감독당국의 상시감시 및 조기경보기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함. 더욱이 경기변동은 금융감독당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주어지므로,금융감독당국으로서는 주어진 조건하에서 금융불안정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음. 그간의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평가 지난 5년 간의 구조조정과정에서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투명성.공정성이 제고되고 기업의 재무구조도 개선되어 해외투자자 등으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왔음. 부실금융회사 퇴출과 공적자금 투입,그리고 금융회사 스스로의 노력 등을 통해,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상당히 회복되었으며 금융산업의 효율성도 함께 증진되었음. 또한 회계.공시.불공정거래 조사 등 시장감독시스템도 제도와 관행이 개선됨으로써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상당 부분 향상되었음.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아직도 일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음. 제2금융권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아직도 건전성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은행의 경우에도 경기침체에 따른 가계.기업여신의 건전성 악화,SK 글로벌 및 카드부실 문제 등으로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음. 특히 금융회사의 기업대출이 축소되고 가계금융이 확대되는 과정에서,일부 금융회사의 신용위험 관리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여 자산건전성이 저하되고 있음. 또한,많은 부문에서 선진형 시장감독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지난 수십년 간의 경제개발과정에서 지속되어 온 잘못된 시장관행이 기대한 만큼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 이와 같이 그간의 강도 높은 금융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 및 시장의 실질적인 개선이 미흡하여,우리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이 대외신인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우리나라 금융부문의 경쟁력 순위는 세계30개국중 14위에 머물고 있음. 금융감독정책 방향 1.금융시장 안정 회복 우선 금융감독정책의 첫 번째 과제는,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주요 현안들을 신속히 처리하여 금융시장의 조기안정을 도모하는 것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임. 그러나 시장불안이 증폭되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감독당국이 시장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피함. 최근 불거진 신용카드사 문제는 카드사 건전 경영에 대한 시장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SK글로벌 분식회계 발표 등으로 불안 심리가 증폭되어 한꺼번에 카드사로부터 자금을 회수함에 따라 제기된 것임. 그동안 정부와 금융회사 공동의 4.3 금융시장 안정대책으로 카드사들은 일단 당면한 유동성 위기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과 함께 금년중 4.6조원의 증자를 추진하는 등 건전경영 기반확보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음. 최근 들어 카드사의 경영개선 노력의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증자의 조기실행과 합병 등을 통해 카드채시장의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면서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음. SK글로벌 문제의 경우,채권금융회사 및 SK측 등 당사자들간의 자율적 협의결과에 따라 처리방안이 결정될 사안이며 정부는 이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 다만,감독당국으로서는 SK글로벌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임. 2.금융구조조정의 지속 추진 향후 금융구조조정은 그동안 해소되지 못하였거나,또는 새롭게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나갈 것임. 다만,경기침체기 하에서의 구조조정은 시스템 리스크의 유발 가능성을 높이므로,금융감독당국은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fine-tuning을 통해 관련 정책을 조정해 나갈 것임. 경기침체기에는 개별 금융회사 및 투자자 수준에서 발생한 위험이 시장 전체로 확산되어 체제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경기회복 지연 부실기업의 증가와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 금융시장 불안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수도 있음. 따라서,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체제적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상시감시 및 조기경보기능을 강화하고 시장기능중심의 감독조치를 적기에 취할 필요가 있음. 이러한 측면에서,이제는 시장의 자율적인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여,부실누적 및 시장불안 요인을 적시에 제거할 수 있어야 함. 따라서,감독당국은 상시감시 및 조기경보 시스템을 통한 사전예방적인 감독관행을 확립해 나갈 것이며,금융회사도 신용리스크 관리체제를 하루 빨리 정착시켜 관련 위험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할 것임. 3.금융시장의 투명성.공정성 제고 금융감독정책의 세 번째 과제는,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시장개혁임. 시장참여자들의 신뢰는 기본적으로 금융의 투명성과 공정성의 제고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음. 즉,기업회계와 공시,지배구조의 선진화 등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이 향상되고 불공정거래관행이 없어져야 함. 이미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제도 개혁방안이 발표된 바 있음. 이 개혁 방안에는 기업의 이사회.경영진.감사의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고 있으며,연결재무제표의 활용과 컨설팅업무와의 방화벽 설치, 회계법인 교체의무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음. 현재 시행중인 공정공시제도도 이미 나타난 문제점들을 과감히 보완하여 정착시켜 나갈 것임.또한,공시내용의 이해와 충실도를 높이기 위한 공시서식의 정비와 불성실공시에 대한 제재 기준강화도 병행해 나갈 것임 아울러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입체적인 조사실시와 예방기능 강화에도 적극 노력할 것임.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형의 조사테마를 계속 발굴함으로써,조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한편, 불공정거래 조사를 위한 인프라도 계속 확충해 나갈 것임. 4.가계대출의 연착륙 유도 금융감독정책의 네 번째 과제는,그동안 급속히 확대된 가계대출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신용불량자 증가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해 나가는 일임.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는 선진국에서 볼 수 있듯이,자금공급패턴이 기업금융에서 가계금융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현상이라 볼 수 있음. 이와함께 통화량 증가세가 지속됨에 따라 은행자산이 증가하였으나, 경제회복의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대출 또는 유가증권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음.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금융회사의 신용위험 관리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관련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고,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이에 따른 부실채권이 확대된 것이 문제의 단초가 되었음. 앞으로,가계대출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가계의 소비활동 등을 감안하여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것임.감독당국에서는 앞으로 가계대출 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가계대출 부실화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해 나갈 것임. 한편,신용불량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무엇보다도 경기회복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이 증대되어 금융소비자의 부채상환 능력이 제고되어야 할 것임. 이와 함께 정부는 신용불량자 증가에 따른 각종 사회적.경제적 파장을 고려하여,기존의 개인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연체금액 등에 따라 개별금융회사 차원의 지원,금융회사 공동의 워크아웃,현재 도입추진중인 법원 주도의 개인회생 제도 등 특성에 맞는 신용회복지원제도의 활용을 유도할 방침임. 그리고 개인신용관리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교육하고 금융회사의 신용평가능력을 제고하여 새로운 신용불량자의 발생을 최소화할 것임. 5.금융회사의 기업금융 기능제고 마지막으로,최근 경기회복 부진으로 증권시장의 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우리 기업이 주식,회사채 등 직접 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임. 특히 대내외적인 경기침체,SK글로벌 문제 등 기업경영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와 시장의 신뢰 저하로 직접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음. 금융회사 입장에서는,기업금융 지원에 따른 사회적 책임문제에 따른 우려가 지속되어 기업금융 취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금리,리스크 관리 및 BIS비율 제고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가계대출을 선호하고 있음. 이러한 기업자금흐름의 문제는 향후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금융회사의 대출기피현상이 확대될 경우,한계기업의 증가와 함께 전반적인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확산될 수도 있음. 또한 향후 기업투자가 늘어날 경우 이에 따른 자금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는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음. 이와 같은 기업금융 부진은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및 기업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적정수준으로 기업금융을 확대시키기 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임. 따라서 우선 금융감독 차원에서 기업금융을 저해하는 요인이 없는지를 Task-Force를 구성하여 종합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시중자금이 기업부문으로 원활히 흐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갈 것임. *맺음말 최근 국내외 경제여건이 불안정한 가운데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음. 이런 때일수록 금융감독당국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해 나가고 제도와 관행을 지속적으로 개혁함으로써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임.특히 금융. 기업 개혁과제들을 원칙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한 단계 더 높임으로써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임. 따라서,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경제여건 하에서도 금융구조조정,시장안정,금융개혁이라는 다소 상충되나 어렵지만 반드시 달성해야 할 세 가지 이율배반적인 과제를 동시에 추구할 수밖에 없음. 다만,작은 충격에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될 수 있는 시기에는 정상적인 시장기능에만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관계자들이 대화와 설득을 통해 모두 相生할 수 있는 윈-윈(win-win)전략에 의존할 필요가 있음.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당국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이견을 조정하여 시장흐름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 또한 이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금융시장의 안정과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여기 계신 각계 지도층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협조와 기탄 없는 조언 및 비판을 부탁드림. 경청해주셔서 감사함. [한경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