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洵勳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 세계에는 이미 몇곳에 경제중심권이 형성돼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유럽의 EU(유럽연합)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아시아지역에도 국가 간 긴밀한 협력이 요청되고 있다. 중국은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도 급성장하고 있어 아시아지역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기술을 들여다 만든 제품을 수출해 경제성장을 해온 우리나라 전략을 답습하는 중국이 지구촌 제조업중심이 되면서,아시아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한 경제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인근에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한국은 '새로운 발전방향'이라기보다 '생존 전략'으로 생산산업에서 지식기반산업으로의 이전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규 투자를 줄이고 경상수지 개선에 노력한 결과 수지를 개선하고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산업투자가 급감하고 잠재성장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지난 몇년 동안 내수 진작으로 경기는 비교적 유지돼 왔다. 하지만 소비자금융이 대폭 확대되어 카드빚 부실이 문제되고 있고,내수가 줄어들어 경기는 침체되고,실업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경쟁력 제고에 대한 장기적 비전없이 경기부양책을 쓴다면 우리 경제는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실업을 경쟁력 강화없이 경기부양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경쟁력은 기존산업이건 신산업이건 점진적인 노동생산성 향상보다는 지식기반으로 전환하여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룩하지 못하면 강화될 수 없다.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고 있는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 산업은 단순히 숙련도를 높여 노동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경쟁할 수 없다. 하루빨리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자체의 경직성을 제거하고,유연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고,지식기반 노동으로 이전해야 한다. 이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식기반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노사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업 자체가 지식기반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과거 생산기반산업의 관행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므로 근로자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경영자가 아무리 새로운 전략을 세워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다. 변화에는 항상 일부의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대다수 근로자가 생존하기 위한 변혁으로 희생이 생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분담하는 것이 사회정의이냐를 따지기보다 조직 내부의 합의로 결정해야 변혁이 빨리, 그리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일단 변화가 일어나면 희생한 계층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우리는 지난 십수년 동안 금융노동쟁의와 물류노동쟁의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문제 해결에만 매달렸지,장기적인 노동관행 개선에 대해서는 노사 어느 쪽도 거론한 적이 없다. 동북아의 물류중심이나 금융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은 그 분야 종사자들의 소득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도 노사분쟁의 불씨가 된다면 동북아경제중심을 추진하는 본질적인 의의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실현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근로자 스스로 지식기반 근로를 터득하고 노동 관행을 개선하면 굳이 동북아경제중심이 되고자 하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지식기반사회로 전환되어 투자수익률이 높아지면 외자가 몰려들고,선진 기업일수록 한국에 사업기반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동북아경제중심으로 가려면 개방된 사회에 지식기반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우리의 인적자본 축적없이 경제중심을 만들면,개방된 국내시장에서 외국사람들의 잔치가 되고 말 것이다. 시행착오없이 교육기관 연구개발기관을 개혁하여 새로운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한편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토론회를 통해 '변화의 비용'을 합의,분담하는 것만이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길이다. 동북아중심에 위치한 우리는 경제성장을 멈추면 생존이 위협받는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