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습이 시작된 직후와 12시간 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국영 텔레비전에 두 차례 모습을 나타냈다. 첫번째 모습은 날짜를 밝히지 않은 채 막연히 미국에 대한 승리를 다짐하는 내용이었고 두번째 방영분은 각료들과의 전시회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그는 이 필름에서 `3월20일'이란날짜를 명시하고 있어 적어도 사전 녹화된 것은 아님을 입증했다. 미국이 `후세인 사망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그로서는 신속히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건재를 국민에게 알려야 할 필요를 절감했던 것이다. 이라크 군대와 집권 바트당 무장세력의 대미항전 의지는 전적으로 후세인이 살아있다는 믿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후세인 모습 방영 후 필름 속의 주인공이 진짜 후세인인지, 아니면 여러 명이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역' 중 한 명인지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정보기관들은 음성분석에 들어갔다.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후세인을 여러번 본 적 있는 기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음성이나 억양, 입의 움직임을 볼 때 본인이틀림없다는 쪽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19일(미국시간) 후세인을제거하고 이라크를 무장해제하라는 `실행(execution: 처형의 뜻도 있음) 명령'에 서명한 뒤 구두로 군 수뇌부에 개전명령을 내렸다. 미국이 첫날 공습의 성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동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날 공습이 특정 개인을 목표로 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공습이 "매우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했으며, 목표물은 "이라크 고위 지도부"였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미군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은 후세인의 은신처를 꼭집어 겨냥한 것이었으며 이 작전은 이라크 지도부를 살해함으로써 이라크군 전체를무력화하려는 `목 베기'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조지 테닛 중앙정부국(CIA) 국장은 부시에게 후세인의 소재를 정확히 짚어냈음을 여러 차례 보고하면서 "놓치면 안 되는 기회"임을 강조했으며 이에 따라 부시가즉각 공격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정보는 후세인 주변 이라크인 정보원이나 변절자가 CIA에게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한 관리는 "후세인이 간 밤에 죽지 않았다 해도 미사일이 정확하게 자신을 겨냥한 것을 보고 후세인은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소식통들은 후세인과 수뇌부가 공습으로 무력화됐거나 야전 지휘관들과 통신이 두절됐을 가능성을 입증하는 정황증거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라크군의 일부 지휘관들은 엎드려 있고 일부는 소규모 공격과 방화를저지르고 있지만 공습에 대한 반응이 비조직적이고 미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이 압도적인 전력과 정보력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인과최측근들의 은신처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안에 극도로 민감한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차남 쿠사이가 지휘하는 정예 공화국 수비대 병력 1만5천명에 둘러싸여 있다. 수십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진 화려한 대통령궁들을 놓아두고 후세인은 대부분수수한 일반 가옥이나 거미줄 같이 연결된 지하 벙커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고슬라비아 식으로 지어진 이라크 전역의 지하 벙커들에는 지휘본부와 공습.탱크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 병원까지 완비돼 있다. 지하벙커 건설에 참여했던 한 엔지니어에 따르면 이들 벙커는 2천㎏의 TNT 폭탄,또는 1㎞ 밖에서 터지는 20t의 폭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여서 재래식 무기로 후세인을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은 또 한 곳에서 하루 밤 이상은 자지 않고 손수 차를 몰아 여기저기를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과 꼭 닮은 여러 명의 대역을 사용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미국은 전자 도청장비를 이용해 이라크 지도부내의 교신을 감청하고 있으며 전쟁이 진행되면 첨단 카메라와 열감지장비가 장착된 무인항공기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후세인의 지하 벙커들을 공격하기 위해 위성 위치추적 장치가 부착되고 깊은지하에 건설된 콘크리트 구조물도 뚫을 수 있는 특수 폭탄을 사용해 정밀 폭격을 할가능성도 있다. 만일 후세인을 암살하거나 체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미국은 전기회로를 파괴하는 고성능 초음파 폭탄인 E폭탄으로 그의 지휘능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만의 하나, 후세인이 죽지 않고 항복하거나 생포될 경우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미국은 이럴 경우 그와 측근 지도부를 전범으로 기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후세인의 성격과 이라크 상황을 아는 사람 중에 이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보는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영님 기자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