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시한 대표적인 방안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이나 사내 복지제도 등에서 차별적으로 대우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임시직이나 일용직 또는 계약직으로 불리면서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제로 산업현장에 적용하는 데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달 초 노동부에서 인수위에 노동정책 방향을 보고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당초 인수위 생각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를 법제화할 경우 오히려 기업들의 근로자 고용이 줄어들고 기업경쟁력마저 떨어질 수 있는 등 역기능이 우려된다는 것이 노동부와 재계의 입장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추가적인 비용발생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채용을 줄이게 돼 비정규직 근로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대해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96만원으로 정규 노동자(1백82만원)의 52.9%. 특히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77만원으로 남성 정규 노동자의 38.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갈수록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임금은 2∼3배 가량 차이가 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근로조건 가운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에 대한 가입률을 보면 정규직은 75∼95%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22∼25% 수준이다. 이같은 노동계의 '저(低)임금' 주장에 대해서도 재계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연구원의 '사업패널조사'를 인용해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의 생산성은 약 75%이며 임금수준도 이 비율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성을 감안하면 '차별'이 아니라는게 재계의 주장이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균등처우'도 성별이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고용형태에 따른 균등까지 포함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재계는 또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이 같은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근속년수 학력 연령 등에 따라 임금차이가 난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직무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직무급 임금체계가 먼저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큰 데다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어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중인 노사정위원회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론을 못내렸던 사안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지난달 22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는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당장 입법화할 경우엔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며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과 외국사례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노사정위원회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정리해 인수위에 보고할 것인지 주목된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