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재계가 재도약 원년으로 삼았던 임오(壬午)년이 저물었다.

순풍과 역풍이,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날들이었고 이제는 빛바랜 달력의 일지로 남을 날들이다.

준비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를 실감케한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다가오는 계미(癸未)년의 '히어로'는 누가 될 것인가.

이미 도전과 응전이 소리없이 시작됐다.

올해 재계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지나갔던 주요 뉴스를 정리해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사상 최대 실적=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등 국내 주력기업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의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사업의 호조를 발판으로 8조5천억∼9조원(세전이익 기준) 선의 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내수시장과 북미시장에서의 약진을 앞세워 최소 1조4천억원 이상의 순익을 달성할 전망이다.

이 여세를 몰아 북미 중국공장 건립을 추진,2008년 글로벌 톱5 달성에 한걸음 다가섰다.

LG전자와 SK텔레콤도 올해 각각 9천억원 및 1조6천억원의 순익을 올려 글로벌 초우량기업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LG 통합지주회사 윤곽=경영효율 극대화를 위해 전자지주회사(LGEI)를 화학지주회사(LGCI)에 흡수합병시켜 내년 3월 통합지주회사인 (주)LG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LG가 발족하게 되면 LG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공식 발표한 지난 2000년 7월 이후 2년8개월 만에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마무리짓게 된다.

지주회사는 출자 및 사옥관리를 전담하고 사업자회사들은 고유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다.

합병작업이 완료되면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 대주주들의 통합지주회사 지분은 약 50%에 달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갖게 된다.

◆SK텔레콤,KT와 지분 맞교환=SK텔레콤은 지난 5월 KT의 정부보유 지분 매각과정에서 11%의 KT 지분을 획득,일약 1대 주주로 떠올랐다.

SK는 전격적으로 지분을 획득하면서 무려 2조원에 달하는 현금 동원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통신시장에 대한 SK텔레콤의 독점 가능성에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자 SK는 KT측과 상호 보유지분에 나서게 됐다.

SK텔레콤은 KT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KT의 SK텔레콤 지분(9.27%)을 받게 됨으로써 경영권 안정과 함께 삼성 LG 등 다른 그룹의 KT 지배를 무력화시키는 소득을 거뒀다는 분석이다.

◆한화,대한생명 인수=한화그룹이 국내 2위의 대형 생명보험회사인 대한생명의 새 주인이 됐다.

지난 10월 한화컨소시엄은 예보보험공사와 총 8천2백36억원에 대한생명 지분 51%를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한화 측은 매각대금의 절반을 11월중 입금한 데 이어 나머지 절반은 2년 뒤 지급키로 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자신이 직접 대한생명 경영을 맡겠다고 나서 종합 금융그룹을 향한 집념을 공식화했다.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에 힘입어 재계 서열 5위(보험자산 포함)로 급부상하게 됐다.

동시에 화학 석유화학 등 제조업 위주에서 금융 레저 업종으로 그룹의 주력사업을 재편하는 데도 성공했다.

◆롯데,거침없는 M&A=롯데는 어느 그룹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지난 5월 패밀리레스토랑 체인인 TGI프라이데이스를 사들인 데 이어 7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인 미도파 백화점을 인수했다.

9월에는 신용카드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동양카드를 인수한 데 이어 옛 한일은행 본점 건물까지 매입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금싸라기 땅인 소공동과 남대문 일대에 조만간 1만1천여평 규모의 롯데타운을 건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송그룹 잇단 새 총수 등장=금호 박정구 회장과 한진 조중훈 회장 등 수송그룹들의 총수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금호는 박삼구 회장이 지난 9월 대통을 이어받아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내실경영을 다지고 있으며 한진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내년초에 그룹 회장에 공식 취임할 전망이다.

양대 그룹은 수송업계 라이벌이긴 하지만 그룹 사장단의 상호 문상을 통해 모처럼 재계 동반자 관계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우차 매각 성공,하이닉스 실패=대우차는 지난 4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매각 본계약을 체결했다.

대우차 처리는 '헐값 매각 시비'에도 불구하고 국가신용도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GM은 지난 10월 군산 및 창원 승용공장과 10개의 해외 판매법인 등을 포함하는 'GM대우오토앤테크놀러지'(GADAT)를 출범시켰다.

반면 하이닉스는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결렬돼 채권단의 채무 재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이닉스의 매각 불발은 비메모리 부문을 인수하려 했던 마이크론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한 데다 비메모리 매각 이후 하이닉스의 정상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임직원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단체협약 해지 및 노조전임자 업무복귀 명령=지난 5월22일부터 7월7일까지 노조가 47일간 장기파업에 돌입한 대응책으로 사측이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했다.

단체협약 해지는 국내 노사관계 사상 초유의 일.

노조측이 단체협약과 전혀 관계없는 노조원 징계 철회와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등을 요구하는 바람에 단체협약을 해지했다는 게 사측의 명분이었다.

사측은 이어 11월28일 노조전임자 13명중 6명을 업무복귀토록 명령하고 차량지원 등도 중단했다.

그러나 노사 양측은 재협상에 나선 결과 12월6일 노조전임자 2명만 복귀하는 수준에서 올해 임단협을 타결하고 단체협상도 복원시켰다.

◆현대상선,자동차 선단 매각=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던 자동차선단이 우여곡절 끝에 총 13억달러(선박금융 제외)에 유럽계 발레니우스-빌헬름센(WWL)과 현대자동차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1년여에 걸쳐 매각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상선은 만성적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고 지난 9월 중순께 국정감사에서 터진 대북지원설 여파로 심각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천명하고 산업은행이 국내외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인수금융을 성사시킴으로써 재무위기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조일훈·김홍열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