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과 조세로는 더 이상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믿을 것은 금융정책뿐이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금융정책이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바람직한 환율수준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구마가이 히로시 보수신당 대표)

일본은행이 정치권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말할 것도 없고,집권 여당의 중진정치인들 모두가 일본은행에 회초리를 대고 있다.

일본은행이 정치권의 몰매 대상이 된 이유는 한가지다.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데도 정책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원망 때문이다.

일본경제의 숙원이나 마찬가지인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타깃을 설정하고,통화정책에 과감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의 핵심이다.

일본언론은 정치권의 공세와 압박이 강도를 더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긴축예산편성으로 재정의 약발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2003년 경제전망도 먹구름에 덮여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권이 일본은행을 탓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총재 인선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타깃을 외면한 하야미 총재의 임기가 2003년 3월 끝나는 것을 계기로 정치권의 주문에 귀를 잘 기울여 줄 후임자를 고르기 위한 정지 작업의 인상을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의 중앙은행 총재 인선이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권자들이 선택한 정치인들로 각료 자리가 채워지는 이상 중앙은행 역시 정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만성 고질병이 정치권과 협조가 잘 되는 인물을 일본은행 총재 자리에 앉혀 놓는다고 간단히 치유될지는 의문이다.

거꾸로 달리는 산업경쟁력,불량채권 처리가 몰고 올 실업,도산 태풍 등은 돈만 푼다고 일본경제가 수술대에서 벌떡 일어설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어서다.

"금융은 산업재생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산업구조의 물갈이가 병행돼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와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경질된 야나기사와 하쿠오 전 금융상의 지적에는 일본의 고민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