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와 경제계는 지난 2001년 다국적 종합컨설팅회사인 액센츄어가 내놓은 '기업가 정신' 보고서에 적잖이 놀랐다.

반기업 정서가 조사 대상 21개국 가운데 한국에 이어 2위로 나왔기 때문이다.

설문에 응한 CEO 가운데 68%가 '우리나라에는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응답했다.

1위를 차지한 한국(70%)에 비해 약간 낮은 수준에 불과하고 20%대의 낮은 비율을 나타낸 미국 등 경쟁국과는 큰 격차를 보인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영국 경제계는 반기업정서를 불식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는 범경제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CEO 원탁회의(round table)를 조직했다.

지난 2월 말 열린 이 회의에는 패트리셔 휴잇 무역산업장관이 참석하는 등 정부도 높은 의지를 보였다.

CEO 원탁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정부와 기업은 물론 시민단체, 언론, 학계 등이 모두 나서야 반기업정서를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래서 △CEO들을 기업홍보대사로 활용해 학교에서 기업가가 하는 일에 대해 강의하도록 하고 △IIP(Investors In People) 프로그램을 마련, 학생들에게 기업가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며 △대기업들이 같은 지역 연고의 소규모 업체들과 공급 계약을 맺어 실질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토록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했다.

이들은 특히 인기 TV드라마 작가를 직접 만나 기업가의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이 묘사될 수 있도록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구체적인 실천전략도 다듬었다.

이 원탁회의를 기획, 주도하고 있는 액센츄어의 버논 엘리스 국제담당회장은 "TV 등 미디어가 탐욕적이고 재산싸움에만 혈안이 돼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업인들을 묘사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데다 일반인들이 기업가들의 활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액센츄어 영국 사무소 관계자는 "왕성한 기업가 정신이 영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인데도 영국의 기업가들은 성공했다는 이유로,그리고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문화적 특성상 위험감수형이 아니라 위험회피형인 영국인들이 이런 반기업 정서 때문에 더욱 소극적이 될 수도 있다고 경제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는 반기업정서가 눈에 띄게 개선될 때까지 이 프로젝트를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지라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좀체 시간을 내기 어려운 최고경영자들이 일선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반기업적인 정부 관료들을 찾아다니며 기업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액센츄어측의 설명이다.

영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런 변화 움직임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이 높은 관심을 보여 액센츄어는 최근 중국 정부와 함께 반기업 정서 개선과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한 CEO 라운드테이블을 상하이에서 개최했다.

독일과 러시아, 캐나다 등도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기업 정서를 떨쳐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세계가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반기업정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반기업정서보다는 친기업정서를 문제삼고 있는 형편이라 씁쓸하기만 하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