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법조 전문지 `고시계' 75년 7월호에 직접 쓴 사법시험 `도전기'가 법조계의 화제다. 고졸 학력의 노 당선자가 독학을 통해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는 과정이 이번 16대 대선에서 여러차례 고비를 극복하며 승리하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는 제목으로 실렸던 수기를 요약하면 노 당선자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산대 법대를 졸업한 형님의 영향을 받고 고시의 꿈을 키웠다. 노 당선자는 수기를 통해 "점점 가세가 기울자 중3때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형님이 보던 `헌법의 기초이론'같은 책으로 고시 공부를 시작하다 형님에게 혼나고 부산상고 장학생으로 진학했다"고 썼다. 그는 "고교 졸업후 농협시험에 떨어진 뒤 동네 야산 돌밭을 개간하며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마옥당(磨玉堂)이라는 토담집을 짓고" 사시 준비를 시작했으며, "법률서적 살 돈이 없어 울산 비료공장 건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이빨 3개가 부러졌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또 "현역복무중 가는 세월을 한 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면서 "수험과정중에 필요했던 끈기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고 썼다. 71년 군 제대후 75년 사시에 합격하기까지 4년간의 고시 준비과정에서 노 당선자는 `존경하던 큰 형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을 지켜봐야 했고, 그 뒤 병고에도 시달렸다. 그는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작전' 끝에 성사된 권양숙 여사와의 결혼생활이 사법시험 합격에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쟁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쓴 부분은 권 여사의 내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든다...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지만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라며 고시 준비생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고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때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됐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고 덧붙였다.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와 `합격에의 신념'을 갖고 그는 75년 17회 사법시험에 응해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