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에도 진담이 담겨 있는 수가 많다. 광복 이후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입심좋은 사람의 얘기 보따리 속에 고정 메뉴가 된지 오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외국면허운전'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과속운전'을 거쳐 '음주운전'으로 마감하는 농담이 있는가 하면,특히 80년대 이후 대통령들은 '돌,물,깡…'단음절로 마감하는 독설도 있다. 최근으로 내려올수록 가혹한 평가는 아마도 국민의 짧은 기억력 탓도 있고,현직을 주마가편하는 격려도 담겨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이 지나고 비교인물이 늘어야 공정한 평가가 나온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 투표소로 간다.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인물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기표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선거유세기간 중 각 진영간에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선거공약경쟁일랑 깨끗이 잊는 게 좋다. 대결하는 보수 혁신 양 축의 극단에 위치한 유권자는 희소하고,유권자 대다수는 보 혁 중간 근처에 집중 분포한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후보마다 평소의 입장에서 좌 우로 위치를 바꾼 공약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판가름의 안개가 짙을수록 이같은 입장 전환은 근접하기도 하고 교차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후보들이 살아온 인생역정과 평소의 소신이지,표를 겨냥한 바람몰이가 아니다. 특히 정당이 아무개 당쯤으로 돼있는 우리사회에서는 어떤 이념이나 정당보다 결국 인물이 중요하다. 세태변화에 대처하는 기민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자의 경우 우둔스러운 진실성이 임기응변술보다 한수 위 덕목이다. 둘째로 인물주변을 살펴야 한다. 후보 한사람만이 아니라 인물주변을 검토해야 한다. 양대 후보 주변에는 자질 청렴 등의 잣대로 보아 의문스러운 인물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선택은 낡은 부패세력이냐 새로운 부패세력이냐를 가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 중국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 나라를 전횡하던 내시들처럼 호가호위할 잠재적 '소통령'들이 어느 진영에 더 많은가를 가려내야 한다. 국민이 선출하는 것은 대통령이지만 덤으로 무임승차하려는 자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기회를 노린다. 후보자가 공천 과정과 선거기간 중 특정세력들에 신세진 부담이 적어야 무임승차자들의 득세를 견제할 수 있다. 셋째로 이 세상에 고립국가는 없다. 그간 우리는 싫든 좋든 미국의 핵 우산 속에서 안보를 누렸다. 반미감정 때문에 그것을 벗어던지면 인접 핵보유국의 위협에 발가벗게 된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도 중국같은 초저임금 경쟁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나라의 경험사례에서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최선의 무기는 경제성장임을 알 수 있다. 후보를 가리는 방법은 국제 정치경제 관계를 바로 보느냐,누가 우물안 개구리를 닮았느냐에 있다. 넷째로 이번 선거 결과로 나라가 갑자기 흥하거나 망하지는 않는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선택이 아니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갑자기 평화를,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전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5년 동안에도 김정일 체제가 건재하는 한,누가 되든 북한의 핵 위협아래 불안한 안보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안정과 불안정'의 양자택일도 어불성설이다. 역동적인 경제에서 끊임없는 혁신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안정 불안정은 사회 심리의 문제이며,후보선택에 따라 불안정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선거전의 과장된 수사학적 표현일 뿐이다. 다섯째로 이번 선거의 큰 쟁점인 세대교체는 누가 당선되든 이루어지게 돼 있다. 누가 되든 3김 시대의 길고 긴 연극이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된다. 물론 나이가 중요하다. 누가 3김의 입김에서 보다 자유로운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진정한 나이는 정신상태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씨 뿌릴 때가 있고,거둘 때가 있듯이 패갈려 다툴 때가 있고 손잡고 화합할 때가 있다. 오늘 소신껏 투표하고 내일 일터로 나가자.우리가 안으로 다투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는 돌고 있다. 안으로 움츠린 시선을 밖으로 돌리자.승자는 아우르고 패자는 5년 뒤를 기약하고 노력하면 된다. pjkim@ccs.sog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