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육성과 서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펴나가겠다." 지난 99년 8월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발표한 광복절 경축사에는 향후 국정방향을 제시하는 굵직한 내용들이 대거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산적 복지'라는 새 국정지표는 역대 정권이 추진했던 복지정책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생산적 복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함께 김대중 정부의 3대 국정지표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생산적 복지정책'은 한마디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현물을 보조하는 사후적인 조치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할 기회를 주겠다는게 요지다. 이같은 복지정책은 외형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제정을 비롯, 복지혜택의 범위가 확대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생산적 복지'가 얼마만큼 '생산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복지정책에 거액을 쏟아부었음에도 빈부격차는 오히려 더 확대됐고 상당수의 빈곤층과 장애인은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의욕 넘친 복지정책 김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한 조찬기도회에서 취임 이후 이룩한 '6가지 성취' 가운데 하나로 '생산적 복지정책'을 꼽았다. 그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뚜렷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저생활보장 수준이 향상됐다. 생계비 주거비 등 현금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4인 가족 기준으로 97년 33만원에서 올해 2.6배인 87만원으로 인상됐다. 현금급여를 받는 대상자도 같은 기간 37만명에서 1백50만여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정권 출범 초기 3천명 수준이던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 숫자도 7천여명으로 늘었고 생활보장예산 역시 4배가량 증액됐다. 복지 관련 전문가들도 과거 어느 정권에 비해 DJ정권의 복지정책이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발효된 지난 2000년 10월은 한국적 복지국가가 탄생한 시발점에 해당한다"며 "나중에 여러 미비점이 나타나긴 했지만 복지정책의 기본이념과 추진력 만큼은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 '성과'의 뒷면 DJ정부의 복지정책은 그러나 '실효성'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통계청이 지난달말 내놓은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상위 20% 가구의 소득이 하위 20% 가구 소득의 5.12배에 달했다. 96년(4.74배)에 비해 소득 불평등 정도가 훨씬 심화된 것이다. 일각에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으로 '놀고 먹는' 사람이 늘어 '유럽형 복지병'을 우려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도 줄지 않고 있다. 올초 보건사회원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2000년을 기준으로 도시근로자 가구의 46.4%에 불과했다. 5년 전의 55.5%에 비해 소득격차가 더 커진 것이다. 지난해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생산적 복지의 핵심정책중 하나인 '자활사업'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자활인턴사업이나 자활직업훈련에 수백억원의 예산이 배정됐지만 정작 참여한 인원은 1천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학 교수는 "정부내에 복지정책을 추진할 중심축이 없었고 정책을 수행할 인프라도 부족해 시행초기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