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언어가 불편합니다." 시계와 프린터로 유명한 일본 세이코엡손그룹의 국내 법인인 한국엡손에 지난 4월 합류한 히라이데 순지 사장(48)은 서울 생활의 불편한 점을 이렇게 꼽았다. "도로 사정이 고도의 기술자가 아니면 돌아다니기 어려울 만큼 아찔해서 직접 운전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제대로 된 도시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이예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도시 생활은 아직도 새롭죠." 히라이데 사장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다른 일본인 사장들처럼 본사 해외영업부터 시작해 아시아를 돌며 지사장을 거쳤다. 5년은 대만, 2년은 싱가포르에서 보냈다. 각 나라를 비교해 한국시장은 대만 싱가포르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이곳에선 영어가 (대만보다도) 잘 안 통한다고 했다. "일본인 4명을 포함한 한국엡손 직원 1백여명중 영어나 일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절반 정도예요. 간부회의의 60%는 일어로, 40%는 영어로 합니다. 당분간 통역에 의존할 수밖에요." 의사소통 문제는 그의 경영철학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비전을 모든 임직원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예요. 아마도 공식 언어를 지정해야겠어요. 영어가 바람직하겠죠." 히라이데 사장의 가장 큰 관심은 급속히 팽창 중인 국내 디지털 복합기 시장에서 얼마나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느냐다. 그는 "지금은 한국HP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지만 6개월 안에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며 "국내 복합기 수요는 향후 2~3년간 매년 30%씩 증가해 일반 프린터시장을 압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히라이데 사장이 믿는 것은 기술력이다. "우리의 자랑은 프린팅 기술입니다. HP의 색감이 화려하다면 엡손 제품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색 재현도가 뛰어난 프린팅을 할 수 있지요." 반면 낮은 인지도는 넘어야 할 산이다. 엡손은 국내 프린터 시장에서 25%를 점유해 HP(40%)와 삼성전자(27~30%)에 이어 3위지만 인지도는 27%로 HP(54%)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법인을 설립한지 5년밖에 안됐으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소니의 디지털카메라와 공동 마케팅도 하고 삼보컴퓨터 LGIBM 현주컴퓨터 등의 PC와는 번들링(묶어팔기) 판촉을 하면서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임기 안에 국내 프린터시장 1위에 도전해 보고 싶군요."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