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리정책을 놓고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내에선 부동산 투기를 잡을 최후 수단으로 콜금리 인상 압력이 거센 반면 '이라크 쇼크'로 대외여건은 악화일로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주가급락으로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박승 한은 총재는 "과잉유동성 환수수단은 금리 인상뿐"(24일 국감)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다양한 불안요인이 혼재돼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스럽다"(25일 경제동향간담회)며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로 각국 경기흐름이 유사해지면서 경기 처방도 닮아가는 '정책 동조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만 '나홀로 금리인상'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 세계경제는 '지뢰밭' 세계 각국이 주가 폭락에 허덕이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대로 올라섰다. 이에 따라 당초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됐던 세계 경제의 회복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늦춰 잡는 전문가들이 많아졌다. 미국은 '더블 딥(이중침체)' 논란 속에 다우지수가 4년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지표들은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을 더욱 흐리게 만든다. 유럽 경제도 올해 1%대 성장조차 버거운 판이다. 평균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있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상무는 "세계 증시가 다시 급락할 경우 금융 부문이 물귀신처럼 실물 부문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금리정책이 닮아간다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5일(한국시간) 금리를 다시 동결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영국은 올들어 한번도 금리에 손을 대지 못했다. 재할인 금리가 0.1%로 '제로(0) 금리'에 가까운 일본은 금리정책에서 손을 뗀지 오래다. 올들어 금리를 올린 나라는 한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뿐이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지난 7월 이후엔 세계 모든 국가가 금리동결 일색이다. 그만큼 정책수단에 제약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 '나홀로 금리인상' 가능할까 과잉유동성이 투기를 부추긴다는 데는 정부와 한은의 생각이 일치한다. 그러나 콜금리 인상시기에 대해선 '두고 보자'는 정부와 '당장 검토해야 한다'는 한은이 맞서고 있다. 한은은 우선 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 총액대출 한도(11조6천억원)를 2조원 가량 줄이고 다음 금통위(10월10일) 때 콜금리를 인상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백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빚을 방치했다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론 안정돼 보이는 물가도 '환율 하락 뒤에 감춰진 시한폭탄'이란 시각이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는 "대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추가 금리인상은 단기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권고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씨티살로먼스미스바니도 "적어도 연말까지 콜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의 금리정책 권고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IMF 보고서가 몇달전 상황을 근거로 한 자료여서 신선도가 떨어진다"며 "금리에 대해 정부 국회 연구기관이나 IMF도 의견을 낼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금통위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