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부친인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10년만에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두 부자는 재벌과 현대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삶의 궤적과 정치적 여건,정치 스타일은 모두 상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정 전 회장은 노동자로 출발, 맨주먹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낸 '입지적전 인물'인데 비해 정 의원은 '재벌 2세'로서 모든 것이 준비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정 전 회장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정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학위까지 딴 그야말로 엘리트다. 이는 정 전 회장에게는 '귀족'으로 커온 아들이 갖지 못한 '카리스마'를 지니게한 반면 정 의원에게는 부친이 못가졌던 합리적 사고와 국제감각을 안겨줬다. 정 전 회장은 또 기업가로서 겪은 정치에 대한 실망때문에 하루 아침에 정계에입문, '벼락치기'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정 의원은 지난 88년 13대 총선 당선 이후 4선의원의 관록을 쌓으면서 차근 차근 대권에 접근해왔다는 점에서 다르다. 대권 도전 때의 나이도 정 전 회장은 77세로 고령이어서 선거운동 내내 건강과관련한 온갖 악소문에 시달렸지만 정 의원은 51세로 '젊음'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지난 92년 대선을 11개월여 앞둔 1월 4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 2월 8일 국민당을 창당, 3.24 총선에서 원내의석 31석의 제3당 입지를 구축한뒤 대선에 임했다. 반면 대선을 석달 앞둔 17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 의원은 대선 두달전인 내달중순 신당 창당을 예정하고 있고 아직은 따르는 현역의원도 별로 없는 단기필마 신세다. 또 정 전 회장은 현대그룹 40개 전 계열사 18만여명의 직원을 사실상 총동원하고 3조원의 개인재산을 토대로 '돈과 조직' 선거운동을 펼쳤다. 정 의원도 현대중공업 6개 계열사(직원 수 3만6천명)를 거느리고 1천800억원의개인재산을 갖고 있지만 이를 부친 때처럼 활용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돈 선거'로 비판받은 부친의 경험을 의식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경영이 투명해져 대주주가 기업을 사적으로 동원하기가 어려워진 상황도고려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은 3김(金)이란 '정치 9단'과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했던 반면, 정 의원은 3김이 퇴장하고 절대강자가 미처 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링에 뛰어들어 대진운은 비교적 좋은 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여론조사 지지도에서도 정 의원은 부친에 비해 일단 유리한 여건에 있다. 정 의원은 그동안 이회창(李會昌.한나라)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40% 안팎의지지율로 앞서고 있고 이회창, 노무현(盧武鉉.민주), 권영길(權永吉.민노) 후보와의4자 대결에서는 30%대로 이 후보를 바짝 뒤쫓고 있다. 정 전 회장은 당시 '개인당'을 독단적, 배타적으로 운영하며 기존 정치권을 답습했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정 의원은 중앙당을 없앤, '원내정당화'와 지구당을 최소화한 '협의체 기구', 대변인제 폐지를 주창하며 대권과 당권의 분리 등 정치실험을약속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