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56). '월드컵 16강' 특명을 받고 지난해 초 한국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을 맡은 그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지난해 5월 프랑스, 8월 체코와의 연이은 평가전에서 모두 0-5로 대패, '오대영 감독'이란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올들어 3월부터 8차례의 A매치 성적은 3승4무1패. 특히 넘을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던 최근 스코틀랜드전에서의 4-1 대승, 잉글랜드와의 1-1 무승부는 한국축구에 대한 내부 평가를 다시 하게 만들었다. 26일의 프랑스전은 역전패했지만 당면과제인 월드컵 16강을 넘어 8강까지 넘볼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감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그는 어떻게 부도직전에 몰린 한국축구에 희망을 꽃피웠을까. 리스크(질 확률)가 큰 한계기업과 같던 한국팀을 맡아 안정적 수익기반(지지않는 축구)의 성장 가능성을 다져 놓은 그의 '비상경영'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 비즈니스모델의 수정 "한국선수들의 자질은 충분하다. 나는 그런 선수들이 몰랐던 것을 조금씩 깨우쳐 줄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한국감독은 그 자원을 계발시키지 못했고, 히딩크는 해냈다. 그는 목표를 달리 잡았다. '이겨야 한다'에서 '지지 않는 또는 어이없이 무너지지 않는 방법'에 주목했다. 흔히 볼수 있는 '캠페인성 리더십'에서부터의 탈피다. 글로벌 경쟁이란 큰 판을 장악할수 있는 전략적 우위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이끌었다. # 가치창조 펀더멘털의 구축은 새로운 가치창조를 향한 토대를 이루었다. 히딩크 감독은 '지지 않는 경기'에서 '이길수 있는 경기'란 공격적 입장의 전술숙지로 나아갔다. 가치창조를 위한 전술은 '조직력'에서 찾았다. 유럽 남미선수들과 비교, 체격조건과 개인기가 뒤처지는 한국팀의 신병기로 조직력을 이용한 세트플레이를 택했던 것. 잉글랜드전에서의 코너킥 세트플레이, 프랑스전에서 두번째 골을 만든 프리킥이 비공개로 연습했던 조직력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경쟁력을 높일수 있는 분야(사업)를 집중 육성(핵심역량 강화), 신제품(세트플레이)을 개발함으로써 매출(골)을 늘리는 방식이 기업경영의 대원칙을 연상시킨다. # 수평적 조직문화 히딩크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다. 그는 선수들에게 "묻고, 따져라"고 요구한다. 경기중에는 후방의 넓은 시야를 확보한 선수가 앞 선수의 위치와 역할을 지시, 유기적인 플레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연공서열 정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력은 개개인의 창의적 능력으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커진다. '생각하는 축구'에 대한 강조는 선수 개개인을 '소사장'이나 '사내벤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 있다. 각자가 순간순간 최고의 위치에서 최적의 포트폴리오(볼배분)를 구성해 수행할수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 경쟁력 제일주의 스피드와 체력의 차두리를 발탁한 것에서 보듯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얽힌 똑같은 패를 고집하지 않고 흙속에 묻힌 진주를 찾아 다듬어 내는 히딩크의 눈은 인사관리의 정수를 보여준다. 교체된 선수들이 골을 많이 터뜨렸다는 사실은 현장 환경에 적합한 인력투입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되 그 능력을 정확히 파악, 적시적소에 투입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와 (기업)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는 "팀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능력있는 선수라도 필요없다"며 조직의 화합과 단합을 중시했다. # 리더십 "팀을 승리로 이끄는 힘의 25%는 실력이고, 75%는 팀워크와 리더십이다." 미 세인트루이스 램스가 1999년 슈퍼볼을 거머쥘수 있게 만들었던 딕 버메일 전감독은 워튼스쿨 강연에서 그렇게 강조했다. 감독(CEO)의 리더십이 승리(기업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갈파한 말이다. 그의 리더십은 구체성을 띠었다. 박항서 코치는 "포지션별 임무를 명확히 부여했고, 동료들과 어떤 식으로 유기적 관계를 맺는지까지 일러주었다"고 말한다. 컨설팅업체 앤더슨에 따르면 "선진기업도 경영전략중 10%정도만 제대로 실행하고 있으며 일선직원은 자기기업의 전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게 현실이고 보면 히딩크의 리더십은 '시스템적 전략경영'의 전형을 보여준다. 공동의 목표를 결집한 분명한 비전제시도 CEO 히딩크의 덕목중 하나. "날마다 1%씩 실력을 쌓아가면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한 것은 아주 잘 요약된 비전선언서라 할 수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