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김민석(金民錫.재선.영등포을) 의원은 올해 38세로 차세대 주자에 도전하는 정치권의 '기린아'다. 김 의원은 오는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뉴 스타트 서울' '서울, 새로운 출발!이제는 삶의 질입니다'라는 슬로건하에 ▲출퇴근 교통난과 주택가 주차난 ▲수돗물불안과 대기오염 ▲교육걱정 등을 3대 우선해결 과제로, ▲영.유아 보육시설 확대 ▲노인 일자리 창출 ▲서울경제 활성화 등을 3대 전략과제로 선정, 정책 캠페인을 펼쳐나갈 작정이다. 특히 70년대 '현대 신화'의 주역인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를 의식, "서울시장은 이제 70년대식 불도저 시장이 아니라 '21세기형 생활시장'이며, 국민을 상대로 돈벌이를 한 비즈니스 전문가가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다뤄온 정책전문가여야 한다"는 점을 집중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22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 자신이 한나라당 후보를 10%포인트차로 앞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차세대 주자'로 진입하기 위한 첫 시험대인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필승을 다짐해왔다. 운동권 출신으로 지난 96년 15대 총선 당시 최연소로 국회에 진입한 그는 '모래시계 세대'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이번에 다시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 기록을 세우게 됐다. 14대 총선때 서울 영등포을에 첫 도전, 민자당 거물급 나웅배(羅雄培) 후보에게260표차로 석패, '다윗의 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당선자 이상의 관심을 모았고96년 같은 지역구에 재도전, 최연소로 당선됐다. 김 의원은 8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 4학년때인 85년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전국대학 총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80년대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85년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및 삼민투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5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88년 사면으로 출소했다. 그는 수감중 작은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하루 휴가를 내 찾은 병원 영안실에서 조문객으로 찾아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만난 것이 김 대통령과 첫 대면이었다. 당시 김 의원의 어머니가 재야단체인 민가협 회장을 맡았던 인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한 것은 90년 이기택(李基澤)씨 등이 주도한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이후 민주당과 김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이 합당한 '통합민주당'에 참여했다. 14대 총선에 실패한 뒤인 93년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석사를 취득하고 95년 귀국, 지방선거에서 조 순(趙 淳) 서울시장후보 선거대책본부의 기획실장 및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분당과정에서 김 대통령을 따라 국민회의에 입당,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99년 10월에는 영문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에 의해 아시아의 새천년 젊은 지도자 20인, 2000년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세계지도자 100인에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97년 한보청문회 때는 돋보이는 논리와 질문으로 이른바 청문회 스타가 됐으며, 99년엔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 대변인으로 창당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같은해 외곽 지원조직인 '젊은 한국'을 결성, 차세대를 의식한 행보를 계속해왔다. 이런 움직임을 보여온 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정치.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적평가도 따른다. 특히 지난 2000년 12월 '권노갑 2선후퇴' 요구를 계기로 민주당이 쇄신파문에휩쓸렸을때 소장개혁파 의원들에 대해 "방법론상 문제가 있다"고 비판, 당내 주류편에 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서울대 동창인 KBS 김자영(金慈英.38) 아나운서와 결혼할 당시 '운동권과 제도권의 결합'이라며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9살난 외동딸이 있다. ◇약력 ▲서울(38) ▲서울대 사회학과, 총학생회장 ▲김대중 대통령후보 특보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국민회의 총재특보 ▲민주당 총재비서실장 ▲15,16대 의원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