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라는 혹한이 불던 지난 1998년 1월4일.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금융의 연금술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과 만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한국의 외환위기 타개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소로스는 "한국 외환위기는 미국 월가의 대 한국 투자마인드를 회복하는 게 핵심"이라며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돕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당선자는 "모든 걸 국제기준에 맞추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이듬해 소로스펀드는 2백75억원어치의 신주(실권주)와 달러표시전환사채(CB) 5백억원어치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서울증권을 인수했다. 당시 소로스펀드는 전환사채의 전환가격을 시가보다 무려 30%나 싸게 받아 '덤핑 매각'이라는 시비가 일었지만 화급하기만 했던 외자유치 논리에 묻히고 말았다. 외자유치 성선설(性善說)만이 통하던 시절이었던 탓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요즘 소로스가 다시금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그가 대주주로 있는 서울증권이 상식밖의 고액배당을 발표하는가 하면 이 재료로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보유주식을 대거 처분했기 때문. 소로스 계열의 퀀텀 인터내셔널은 지난 11일 서울증권 발행주식 총수의 6.29%에 해당하는 3백50만주를 주당 8천5백30원에 매각했다. 이를 통해 총 2백98억5천5백만원을 거머쥐었다. 소로스의 주당 처분가격은 서울증권이 지난 8일 액면가(2천5백원) 대비 60%에 달하는 주당 1천5백원의 현금배당을 발표한 뒤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뒤다. 한쪽에선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고 다른 한쪽에선 주식매매 차익도 얻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쯤되면 외자유치 성악설(性惡說)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외국인의 잇속 챙기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현행 법규 안에서 이뤄졌으니 할 말도 없다"고 말했다. 자본의 속성은 물과 같다. 특히 투기자본은 더할나위 없다. 이익이 많이 나는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외자 유치가 만병통치약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남궁 덕 증권부 기자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