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3월 초순. 중국의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장조리(차관보급)를 비롯한 실무책임자급 관리들이 굳은 표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장 지난해 수입을 약속한 물량을 소화해 달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소금 유연탄 등의 수입을 늘리고 면직물 명태 등에 부과하는 조정관세를 폐지해 달라" 곧이어 열린 양국간 실무 접촉에서 중국 관리들은 줄곧 강경한 자세로 이같은 요구를 내놨다. '최후 통첩'의 성격이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회고했다. 최악의 통상외교 실패 사례로 꼽히는 중국과의 2차 마늘분쟁은 이렇게 현실화됐다. 3만2천t의 마늘을 사주기로 한 만큼 아직 수입하지 않은 1만t에 대한 수입 방안을 마련, 조속히 이행하라는게 중국측 요구의 골자. 2000년 1차 마늘분쟁 때 "2002년까지 매년 3만2천∼3만5천t의 중국산 마늘에 대해 30∼50%의 낮은 관세율을 적용한다"는데 합의했던 중국이 새삼 한국 정부의 '의무 수입론'을 제기해 온 것. "정부내에서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중국측의 요구는 국제 협상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지적이었지요.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많았습니다"(정부 관계자) 그러나 정부 일각의 이같은 강경 대응론은 중국이 실력 행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만다. 2000년에 이어 또 다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PE)의 통관절차를 중단시키려는 중국측 분위기가 포착된 것. 결국 황두연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그해 4월 하순 베이징에서 스광성(石光生) 대외경제무역부장(장관급)과 회담을 갖고 한국 정부가 마늘 수입을 직접 약속하는 합의문에 서명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중국의 '어거지 주장'에 대해 변변한 항의 한 번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자칫 휴대폰 및 폴리에틸렌 수출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미숙한 협상 능력이 2차 마늘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지적도 많다. 2000년 1차 마늘협상을 마무리지으면서 서명한 합의문은 놀랍게도 영어를 제외한 채 한국어와 중국어로만 작성됐다. 바로 이 잘못이 두고두고 화근이 됐다. 합의문에는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포함해 한국은 2002년까지 3만2천∼3만5천t의 중국산 마늘을 매년 '관세할당' 방식으로 수입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중국은 관세할당의 의미를 '정부가 수입을 보장하는 의무수입 물량'으로 해석했고 한국은 국제 관례상 'Tariff Quota로써 낮은 관세로 수입하는 최대한도'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양측의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렸지만 국제규범에 맞는 영문 합의문이 없어 국제기구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양자 협상에서는 때로 양국 언어로만 합의문을 작성하기도 합니다. 2차 협상에서는 영문 합의문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정부 관계자)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같은 엉성한 대응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 약방문'이 됐다. 협상 문맹(文盲) 한국의 비애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