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꽁치물량의 30%를 공급하는 남쿠릴열도 어장에서의 꽁치잡이가 일본과 러시아의 '밀약'때문에 내년부터 전면 중지될 위기를 맞게 됐다는 보도는 지난 6월 불거진 한·일 꽁치 분쟁이 그런대로 조용하게 수습되려니 믿고 있던 터여서 매우 당혹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내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일본과 러시아는 남쿠릴수역에서 한국 등 제3국의 꽁치조업을 금지키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으며 9일 도쿄에서 열리는 차관급회담에서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요청이 받아들여진 시점이어서 우리 정부로서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셈이다. 남쿠릴열도의 영유권을 다투는 두 나라간에 쉽지않은 밀약이 이루어진 배경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일본으로서는 러시아가 한국에 이어 북한 대만에도 조업권을 주자 더이상 '영토침범'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고 러시아 역시 일본으로부터 입어료 보상을 받아 밑질 게 없는데다 러시아어민들의 대일 꽁치 불법수출을 막아 관세수입까지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섰을 것이다. 최근 꽁치분쟁에 임하는 일본의 태도는 방약무인하다는 표현이 그대로 어울린다. 일본은 한·일 어업협정 합의사항에 따라 지난 8월20일까지 산리쿠수역에 대한 조업허가장을 발급했어야 하지만 우리 어선의 남쿠릴어장 조업을 문제삼아 발급을 계속 거부해오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돈을 앞세워 러시아를 회유,남쿠릴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국제관행을 무시한 강대국간 뒷거래도 떳떳지 못하지만 이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이미 지난달에 외신보도와 주일 한국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한채 허둥대고 있는 우리 외교당국의 모습은 더욱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는 "완전한 제3국 조업금지 방안이 합의될 가능성은 없다"고 장담하지만 이미 이 문제가 일·러 차관급회담 의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막무가내로 나갈 경우,우리쪽 수역에서의 조업불허 등 강경대응도 고려해야 할 것이며 오는 15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정치적 해결도 적극 시도해봄직 하다. '과거'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마디의 '유감'표명보다 꽁치분쟁과 같은 실리가 걸린 현안에서 일본측의 확실한 답변을 듣는 일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