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 중앙대 교수 / 공적자금관리委 민간위원장 > 공적자금이란 어떤 돈이며 어떻게 쓰이는지,그리고 공적자금 관리위원회는 무엇을 하는 기구인지 일반 국민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오해가 있다. 심지어 '재벌에게 퍼주는 돈'이라느니 '낭비되는 공짜자금'이라고 보는 경우도 많다. IMF 사태는 무려 3만개에 이르는 기업을 도산시켰다.이들 도산 기업들은 은행에 부실채권을 떠넘겨 금융이 부실화하는 이른바 '부실 악순환'을 유발했고,그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돼 아직 우리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과정에서 기업들이 쓰러지는 것은 정부나 국민이 떠맡을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이 쓰러지게 되면 어느 나라나 정부와 국민이 나서서 떠안을 수밖에 없다.기업 부실로 금융기관이 도산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은행예금이나 보험회사에 맡긴 보험금은 모두 날아가 버릴 것이고,금융거래는 마비돼 경제가 파탄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우리는 이러한 부실위기를 여러차례 경험한 바 있다.그 때마다 부실을 국민들이 부담한 방법은 국민세금에 의한 조세감면,통화증발에 의한 금융특혜,그리고 이것으로도 안될 때는 1972년의 사채(私債) 동결조치까지 취한 바 있다. 민주화된 오늘의 상황에서 이러한 방법의 대안으로 고안된 국민부담 방법이 곧 '공적자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공적자금은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가 정부의 보증을 받아 시장금리로 발행하는 3∼5년 만기의 회사채다. 정부가 보증하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이 자금이 회수되지 못하는 부분은 결국 어느 때든 국민들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말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을 제정하고,공적자금의 관리를 중립적인 특별위원회에서 감시 감독하도록 하기 위해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8명으로 된 이 위원회는 세 사람의 정부측 위원과 여당·야당·대법원·대통령이 추천한 민간위원으로 구성하고 있다. 공적자금에 관한 모든 집행사항을 이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이 위원회는 집행의결기관이 아니라,공적자금의 기획과 원칙에 관한 심의조정기구다. 그러므로 정부의 공적자금에 대한 집행을 국회로부터의 수임에 의해 감시 감독하는 기구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적자금은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기업에 주는 돈이 아니라,금융신용을 지키기 위해 부실금융기관에 투입하는 자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농어민들에게도 공적자금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옳지 않은 것이다. 농어민이 어려워서 농협이나 수협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농협이나 수협이 부실화한다면 당연히 이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 실제로 농협과 수협에는 모두 1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이미 투입됐다. 그런데 어려운 농어민에게 공적자금을 줘야 한다면 어려운 세탁소나 구멍가게에도 줘야 하지 않겠는가. 7월 말 현재 1백12조원(회수자금 재투입분 28조원 제외)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그 가운데 35조원이 회수돼 회수율은 32%이다. 이 회수율은 일본의 17%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앞으로 더 회수되겠지만 상당 부분이 국민 부담으로 귀착할 것이다. 이 돈은 어떻게 상환할 것인가. 상환부담은 2003년부터 4년 동안 매년 약 20조원씩 집중돼 있다. 그런데 공적자금의 효과는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가는 것이니,차환발행을 통해 당대와 차세대가 함께 부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국가 채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가벼운 편이다. 경제사정이 좋아질 때 갚도록 상환계획을 짠다면 상환문제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막대한 국민부담의 자금을 투입해서 얻은 효과는 무엇인가. 만일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의 은행 투신 등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은 파산했을 것이고,이들 금융기관에 맡긴 국민들의 돈은 모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 우리 경제가 어떻게 돼 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ps0216@net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