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에도 패션이 있습니까" 해외 패션행사에서 만난 외국인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중국과 일본은 압니다.그런데 한국 스타일은 뭡니까"라고 묻는다.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디자이너들도 현지 패션관계자들로부터 비슷한 물음을 자주 듣는다.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지만 그렇다고 똑 부러지는 대답도 해줄 수 없어 더 서글프다는게 디자이너들의 얘기다. 프랑스 미국 등의 패션계에서는 2∼3년전부터 동양풍이 첨단 유행으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은 중국과 일본,두 나라 뿐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색채로 대변되는 중국,무채색으로 극도의 절제미를 추구하는 일본. 두 나라의 이미지가 동양풍의 전부로 통한다. 외국의 패션인들 중에는 특히 일본 문화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패션리더라고 자처하는 인물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가타카나를 웬만큼 읽을 줄 알고 젓가락질을 자연스럽게 할 줄 알아야 '쿨(cool)한 멋쟁이' 취급을 받는다. 점심에는 샌드위치 대신 생선초밥을 먹고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신다. 우리 눈에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제품도 재패니즈 스타일이라면 무조건 "동양적이고 신비롭다"며 감탄한다. 그런데 최근 주목거리중 하나는 지금까지 패션계 인사들이 자기과시용으로 즐겼던 오리엔탈 붐이 대중에게까지 파고 들었다는 사실이다. 값비싼 일본 음식이 패스트푸드화 되고 있고 리바이스를 즐겼던 젊은이들은 일본 청바지브랜드 '에비수'에 열광하고 있다.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요란하게 몸치장한 일본 시부야 스타일은 이제 런던과 파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어떻게 일본 패션이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까지 파고 들 수 있었을까. 현재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팬 2001'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이 행사는 영국 전역에 일본의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열리는 초대형 문화 홍보 프로젝트다. 영국 일본 양쪽의 정부및 왕실 후원은 물론 일본항공 도요타자동차 등 유수의 기업들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음식부터 의상까지 일본의 문화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패션상품구매를 유도한다는게 이 이벤트의 목적이다. 일본패션은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이라는 든든한 거인의 등에 업혀 벌써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 겨우 "한국패션의 오리지날리티는 무엇이냐"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받는 우리네 사정과는 천지차이다.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