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몰아닥친 안개 속을 헤매던 헬기 조종사의침착한 대응이 2명의 고귀한 생명을 건졌다. 한라산 등반로 정비와 훼손지 복구작업에 동원됐던 '벨(BELL) 214B' 헬기가 한라산 북쪽 해발 1100m 고지에 추락한 것은 22일 오전 10시 20분. 이른 아침부터 바람도 약한데다 한라산 전체가 깨끗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를 보이자 기장 김용기(47)씨는 부기장 배형식(41)씨와 함께 자재(자갈) 수송을 시작했다. 2t 무게의 자갈 포대를 매달아 관음사 야적장에서 성판악 등반로 진달래밭 대피소 부근까지 헬기로 왕복 8분여 거리를 10여차례 운항하던 김 기장은 안개가 몰려오자 일단 작업을 중단했다. 오전 10시가 지나면서 안개가 걷히자 수송을 재개한 헬기는 그러나 이륙 1분여만에 갑자기 몰려든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 김 기장은 부기장에게 헬기 아래 매달아놓은 자갈 포대 연결고리를 풀어 떨어뜨리도록 한 뒤 안개를 빠져나가기 위해 조종간을 올렸다. 그러나 시속 200여㎞ 속력으로 짙은 안개 속을 운항하던 헬기는 순식간에 한라산 북쪽 능선에서 나무와 접촉하면서 숲 속에 추락하고 말았다. 나무 숲을 뚫고 헬기 동체가 지면과 닿는 순간 머리를 다쳐 잠시 의식을 잃었던김 기장은 부기장과 함께 기체를 탈출했고 기체는 30여분 만에 전소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락 순간까지도 조종간을 최대한 올렸다"는김 기장은 "기체가 상승하는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편도 4분의 짧은 운항 구간에서 위험을 직감, 자갈 포대를 빨리 버린 것도 헬기가 `연착륙'할 수 있게 해줬다. 김 기장은 "26년 동안 헬기를 조종하며 수많은 악천후와 위험한 순간을 만났지만 한라산처럼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이는 곳은 보지못했다"며 "앞에서 다가오는 안개라면 피할 수 있었을텐데 뒤쪽에서 기류를 타고 안개가 순식간에 덮치는 바람에빠져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기장의 이같은 진술을 근거로 본다면 이날 사고의 원인은 갑자기 들이닥친안개, 그리고 한라산의 날씨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운항을 재개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경찰과 항공사고조사위원회 등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있지만, 사고 원인규명을 떠나서 급박한 상황에서도 조종사의 침착하고 민첩한 대응이 돋보인 사고였다. (제주=연합뉴스) 홍동수기자 dsh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