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여!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월26일 낯선 땅 일본 도쿄에서 취객을 대신해 26세의 꽃다운 생을 마감한 이수현씨.

한·일 두나라를 찬탄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이씨의 숭고한 정신은 일본 열도 곳곳에 ''이수현 신드롬''을 낳으며 사망 1백일(6일)이 가까워오는 오늘까지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선 사건이 발생했던 지하철에서부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씨가 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플랫폼 매점(키오스크)에서의 술 판매가 일제히 금지됐으며 14개 도쿄 지하철과 JR동일본은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역 플랫폼과 선로를 차단하는 도어 설치를 검토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건 일본인들의 소극적 의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철도역 구내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철로에 뛰어드는 이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일본인들이 정의와 양심,용기에 새롭게 눈뜨게 됐다"고 연일 극찬했다.

주일대사관측은 "몇십년 걸려도 이뤄내지 못한 일을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이 해결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씨를 잊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씨에 따르면 최근 일본 중의원 의원인 도쿠다 도라오씨는 올해 안에 서울에 있는 한 병원을 인수,''이수현 기념병원''을 세우는데 이어 오는 2004년까지 수현씨의 고향인 부산에도 기념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와세다대 게이오대 주오대 고쿠시간대 등 일본 유수대학들의 조문과 조의금 행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 역시 이수현씨 사건을 기점으로 몰라보게 좋아졌다.

뉴스위크지 최근호에 따르면 이수현씨를 계기로 한국 남성을 용기있는 애인의 전형으로 올려놓는 일본 여성들이 늘어났으며 이런 움직임은 ''한국을 배우자''라는 일본내 한국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손형만 나스닥 재팬 부사장은 "일본인의 잘못으로 한국인이 죽게 됐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일본 기업인들을 자주 만난다"고 전했다.

이밖에 "요즘같은 세상에 일본 젊은이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을 한국인이 해냈다"(이와타 나부코 사장),"같은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 부끄럽다.한국인의 용기에 감동했다"(쓰치야 나오키 니혼코교은행원)등 한국인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다는게 일본 주재 한국인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이수현 신드롬은 현해탄을 건너 고국에까지 스며들었다.

이달 들어 김경호 윤도현 강산에 등 국내 유명가수들이 이수현 추모 음악회를 개최했으며 대한럭비협회는 올해 신설된 ''아시안 상위 3개국 대회''의 명칭을 함께 숨진 일본인의 이름까지 넣어 ''고 이수현-세키네 지로 추모대회''로 바꾸고 대회장소도 한국에서 일본으로 변경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