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개성상인과 중국상인이 한판 붙었다.

베이징상인들이 짜고 동지사를 따라온 개성상인의 인삼구매를 보이콧한 것이다.

천리길을 가져온 인삼을 되가져 가느니 분명 헐값에 내놓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객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달려가 보니 "제값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태워 버리겠다"는 것이다.

1년에 한 두번 오는 인삼을 사지 않으면 타격을 입는 베이징상인은 허겁지겁 담합을 풀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반쯤 탄 것은 미리 준비해간 도라지였다.

지금 우리의 통상전선에는 강성화하는 부시행정부, 대국화하는 중국, 그리고 우경화하는 일본의 삼각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한.중 마늘협상을 보자.

아무리 마늘표밭(?)에 군침을 흘린 정치권에 등을 떠밀렸다손 치더라도 정부는 개성상인의 두가지 협상전략, 즉 ''도라지''와 ''배짱''을 갖지 않고 어설프게 마늘전쟁을 시작했다.

통상협상의 기본전략중 하나가 ''보복위협''과 그에 대한 ''대응보복의지''다.

과거 자동차협상에서 보듯이 한국은 물론 경제대국인 일본도 미국의 301조 보복위협 앞에 결국은 연성(soft)협상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중국은 오늘날 미국의 보복위협에 강력한 대응보복의지로 맞받아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1995년 미국은 슈퍼 301조의 칼을 뺐다가 대미항공기구매를 취소하겠다는 베이징의 으름장에 슬며시 꼬리를 내린 적이 있다.

우리는 사사건건 중국의 보복위협에 말려 들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개성상인의 ''벼랑 끝 협상전략''인 배짱을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 중화(中華)의 복고적 환상에 젖은 베이징은 ''한국은 밀어붙이면 무릎을 꿇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더욱 강성(hard) 협상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이의 장기적 피해는 지금의 마늘 휴대폰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 우리는 중국을 잘못 길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잘못 길들여 있는 일본의 우경화를 보자.

일본의 교과서왜곡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두 나라간 정치외교의 틀 속에서 해결되어야지, 일본제품불매운동과 같은 통상문제로 비화해서는 안된다.

미국 등 선진국이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은 정치외교와 통상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정치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가 하던 통상협상을 무역대표부에 맡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일본이야말로 초강대국 미국과 날로 거대해져 가는 중화경제권 사이에서 한국경제 운신의 폭을 넓혀줄 유일한 경제우방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외제자동차수입,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인수, 의약품가격 상환제도 등에서의 불공정무역관행 시비로 한창 가열되고 있는 한.미통상을 보자.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으론 오랜 맹방이지만, 막상 통상협상테이블에 앉으면 참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으로서는 다른 데서는 마음씨 좋던 ''엉클 샘''이 자국의 통상이익 앞에선 냉정하게 돌변하는게 야속하기 그지 없다.

더욱이 지금 미국이 한국을 몰아붙이는 불공정무역의 잣대가 ''너무 일방적으로 미국적''이다.

미국도 미더운 안보협상과 달리 통상협상에선 한국을 선뜻 신뢰할 수가 없다.

외견상으론 문을 열었지만 미국기업의 말을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리 많다는 것이다.

이의 좋은 예가 97년 미자동차공업협회 카드 회장의 볼멘 소리다.

외제차에 불리한 세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수입차에 대한 왜곡된 소비자 편견, 세무조사 등 뭔가 석연치 않은 불신의 씨앗 투성이라는 것이다.

이 갈등은 결국 한국자동차시장에 대한 슈퍼301조 지정으로 낙착됐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카드 회장이 지금 백악관 비서실장이 되어 가뜩이나 취임 초기 강성인 부시 대통령의 옆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 통상으로선 엄청난 역로비(!)를 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대미통상의 최우선 과제는 ''신뢰의 구축''이다.

이는 우선 정부정책의 투명성과 공정성에서 나오지만, 그간 한.미간 불신이 커다란 통상이슈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육교에 내건 국산품 애용운동 같은 어설픈 경제국수주의에서 나왔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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