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5박6일간의 미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일부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겠지만, 현 시점 한국과 미국이 같은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국익의 내용과 범위가 같은 것이 아니라면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합의문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 김대중 정부와 부시 정부는 대북정책 및 한반도 문제에 관해 뚜렷한 인식차이가 있음이 명백히 나타났다.

그동안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클린턴 정부와 대체로 무난히 조율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별히 비교되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 대통령의 구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에는 항상 ''한반도화''와 ''국제화''라는 두 방식이 교차되어 있다.

6.15 정상회담과 뒤이은 남북관계 개선경과는 ''한반도화''의 방식에 속한다.

반면 북.미협상, 한.미동맹, 4자회담 등은 ''국제화''의 메뉴들이다.

남북한 모두 이 복잡한 방정식의 교차점 위에 서서 전략을 구상한다.

그러나 미국 입장은 조금 다르다.

''한반도화''를 통한 방식에는 미국이 직접 관리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이 점을 명백하고 단호한 어조로 한국에 대해 다짐해 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합의문에 ''새 안보위협에 대한 동맹국들과의 합의''를 포함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문제 해결구도에서 한국을 단단히 미국의 편에 묶어 두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지 않겠으며 4자회담에서 다룰 의제''라고 한 걸음 물러났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 채택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애초의 구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을 다소 달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4자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다루게 되면 북.미간 양자협의에서 첫 단추가 끼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외교의 취약성과 한계는 지난달 27일 한.러 공동성명에 포함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문구에 대한 사과에 이르러 여실히 드러났다.

ABM과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추진계획 사이에서 나름대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편가르기 게임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음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부시 정부의 전략은 ''냉전적 사고''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서 나온다.

힘의 우위에 기반한 전략구상이나, 힘의 우위가 냉전에서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80년대 신화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고장난(broken)'' 국가로 전제하고, 개방을 하건 하지 않건 붕괴할 것이라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언급은 90년대초 대두되었던 북한 붕괴론의 단순한 재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더 위협스럽게 들린다.

90년대 북.미관계의 위험스러운 줄다리기 게임과 긴박한 한반도의 긴장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야 정책적 과오가 단지 시행착오의 교정 과정이 될 수 있겠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몫은 실로 크게 된다.

한국 외교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와 ''국제화''의 두 축 위에서 보다 높은 협상력과 지렛대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구상의 관점에서 미국을 봐야하고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

부시 정부는 외교정책구상을 정돈해 나가면서 점차 외교적 압력을 상당한 정도로 증대시켜 나갈 것으로 보여진다.

약소국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이나 무력함이 현실주의 논조로써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교부문의 창의력을 모색하고 또 국가적 자긍심을 상기해야 할 때다.

외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kimkij@bubbl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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