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 < 공정거래위원장 leeng@ftc.go.kr >


이번 겨울에는 참 많은 눈이 왔다.

32년 만의 최고 적설량이라고 한다.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처럼 어릴적 추억에 젖어들 수 있었다.

눈(雪)은 잊고 지내던 동심을 되찾아주고 우리 눈(目)을 즐겁게 해 주는 좋은 선물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가면 이번 폭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다.

특히 농가,달동네 주민들이 고통을 당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을 탓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외국에 있을 때 보고 느꼈던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미국 5대호 주변도시들인 시카고 버팔로 등은 소위 호수효과(lake effect) 때문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

이 지역의 시나 군 당국은 겨울에 눈 치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떤 곳은 눈 치우는 경비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많은 눈이 오므로 제설장비,인력 및 제설제를 완벽하게 갖추고 바로바로 치우지 않으면 주민들이 제대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제대로 못 치운 시장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반면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시애틀 등의 서해안지역은 어쩌다 2∼3㎝의 눈만 오면 2∼3일간 모든 것이 멈춰 버린다.

어쩌다 한 번 오는 눈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제설장비와 인력을 갖추기 보다는 잠깐 불편하고 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시나 군 당국의 예산,즉 주민들이 내는 세금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보다 중요한 일에 그 돈을 써야 된다는 ''경제적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에서 잠깐의 불편 때문에 값비싼 제설장비와 인력,염화칼슘 등을 구비한다면 그만큼 사회복지 등 다른 분야의 예산이 줄어들거나 주민이 내는 세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민들이 자기 집앞의 눈은 자기가 치운다.

지나가던 행인이 집앞 눈길에서 넘어지면 집주인이 손해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자기집 주변 골목의 눈은 자기가 치우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정부가 일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등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형성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가 계속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