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차린 한 한국인을 만났다.

한국 대기업 계열사 직원인 H씨는 이 회사의 미국 현지법인에 파견돼 일하다 동료 몇명과 함께 지난해 암호기술과 지문인식기술을 결합한 기업용 보안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두뇌유출이 화제에 오르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기업가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창업하는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합리적이고 편리한 미국의 기업환경에 감동했다는 것이다.

실제 회사설립 작업도 무척 간단히 처리했다고 소개했다.

서점에서 30달러짜리 회사설립 신고서 양식을 사서 작성한 뒤 주(州)정부에 우편으로 보냈더니 2주쯤 후에 설립허가서가 우편으로 왔다고 했다.

그가 진정으로 감탄한 것은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의 개방성이다.

좋은 사업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최고경영진이 신속히 나서서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기업문화에 놀랐다는 것이다.

"처음에 상품을 거의 완성해 보안업체인 베리사인을 찾아갔습니다.
매니저를 만났는데 무척 호감이 가는 눈치를 보이더군요. 다음날 자기 보스가 만나보고 싶어하니 오라는 거예요. 이 양반도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부사장과 만나 구체적인 협력방법을 논의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로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의 회사는 현재 베리사인을 비롯한 몇몇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기 쉽고 또 업무도 쉽사리 진행됐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에서 대기업과 제휴해 이 사업을 하려고 했다면 아마 서너달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창조적 두뇌''들이 서류 뭉치를 들고 관청을 드나들고 대기업의 사무실을 오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그러한 잡일에서 자유롭게 해줄때 ''두뇌 유출''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