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辛巳)년 새해를 맞는 우리 국민들의 감회는 1년 전과 사뭇 다르다.

새천년을 열면서 부풀었던 기대감은 이미 스러졌고 이제는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린듯한 위기의식만이 가득할 따름이다.

지난 3년간 고통속에서 추진해온 구조조정이 물거품이 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허탈감,그리고 위기재발에 관한 불안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경제운용 실적이 비교적 양호했음에도 위기감이 이처럼 팽배하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미국 경기의 둔화,원유가격의 급등,국내 증시의 폭락,자금시장 경색,국내경기의 침체전망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국민들이 경제 변화에 과민하게 반응함으로써 불안감이 확산된 측면도 없지않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에 자만심을 갖게 된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인심잃을 정책들을 뒤로 미루기만 했던 것이다.

일관성 없는 정책과 뒤늦게 시한을 정해 두고 밀어붙이는 구조조정대책이 오히려 불안감을 확대시켰다.

이같은 불안감의 해소는 물론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정부와 국민들이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쏟아야 할 일은 시스템 개혁이다.

그간 고도성장을 지탱해온 각종 제도와 그 운용방식은 이미 낡았다.

시스템이 낙후된 부문뿐 아니라 필요한 시스템이 아예 결여된 분야 또한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와 정부부문의 낡은 시스템이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구태의연한 파벌정치,폐쇄형 관료주의,부처 이기주의,관주도 정책결정 또는 시장간섭주의의 관행들이 상존하는 한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범세계적 흐름속에서 선진국들과 보조를 맞춰 나가기가 어렵다.

금융시스템을 두고보더라도 관치금융 때문에 경쟁체제나 여신심사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고 주인없는 은행들이 책임경영의 시늉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시장경제제도를 뒷받침해 줄 하부구조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기업지배구조에 관해서는 현실감없는 논의만 무성할 뿐이며 대립적인 노사관계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인센티브 제도의 미비, 투명성의 결여, 도덕적 해이의 만연, 신용평가제도의 미흡 등이 보태어지면 시장경제는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셈이 된다.

사회적 갈등과 복지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문의 시스템이 제대로 개혁되지 않는 한 우리경제의 미래가 밝게 열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정부의 개혁 노력은 금융기관 폐쇄와 합병,부실기업정리,부채비율과 BIS비율의 준수독려 등 외견상 드러난 문제점의 처리에 집중돼 왔다.

앞으로는 제도와 관행의 개혁에 힘을 쏟아야 위기의식의 해소는 물론 장기적인 국가번영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의 개혁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작동이 단기간에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새해들어 정부가 진지한 자세로 시스템 개혁이라는 장기적인 대응방안을 찾아나선다면 그 소식만으로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고 불안감을 줄여주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