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가 된 연말 자금경색을 풀기 위해 정부가 연말 기업자금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업의 "돈맥경화"를 풀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자금위기가 시중에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뢰위기와 금융시스템의 붕괴 탓이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IMF 초기 연 30%의 고금리 속에도 돈은 돌았지만 지금은 불신 불안 불확실이란 "3不현상" 속에 대출하기 겁난다"고 말했다.

따라서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옥석을 가려내고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전에는 돈가뭄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 자금대책 내용 =금감원이 내놓은 대책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도입 <>프라이머리CBO 연내 2조원 발행유도 <>2백35개 회생가능기업 자금지원 강화 <>2차 채권형펀드 10조원 연내 조성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신용등급이 낮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은행들이 대출해 줄 수 있도록 CLO를 도입한 점. CBO(채권담보부증권)가 회사채(Bond)를 묶어 유동화시키는 반면 CLO는 대출(Loan)을 묶어 유동화시킨다는 차이가 있을 뿐 발행구조는 유사하다.

개별기업 대출은 부도로 떼일 염려가 있지만 여러기업의 대출을 묶고 50%까지 보증해 주면 투자적격 채권이 될 수 있다.

금감원은 CLO의 금리는 CBO(우량회사채+2~3%) 수준인 10~11% 선에서 형성되고 주로 발행 은행이 인수해갈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입장에선 대출금을 보증채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출을 늘려도 BIS 비율이 내려가지 않는 효과가 있다.

금감원은 CLO에 넣을 대출채권을 신규대출이나 기존대출의 증가분으로 제한해 은행의 대출을 독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은행들에 대해 2백35개 회생가능기업의 신용공여(대출 지급보증 회사채 기업어음 등) 규모를 퇴출판정때(11월3일) 수준을 유지하고 적어도 내년 3월까진 만기연장토록 했다.

관계자는 "만기도래 회사채의 일률적인 만기연장은 어렵지만 회사채 상환으로 기업이 자금난을 겪게 되면 주채권은행이 신규자금을 지원해서라도 회생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 효과 있을까 =금감원은 이달중 만기가 되는 회사채가 10조원이지만 이중 A등급이상 채권, ABS(자산담보부증권), 법정관리.워크아웃 채권 등을 제외하면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2조2천억원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엔 만기 회사채 28조2천억원중 5조4천억원이 만기연장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신용보증기금이 50%를 보증해 주는 CLO나 CBO 등으로 투자부적격 채권이나 기업대출을 해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당장 연말을 넘기기 급한 기업들에 이번 대책은 큰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CLO를 발행해 기업에 실제 돈이 지원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리므로 시차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BIS 비율 탓인데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에선 IMF 초기에 했던 것처럼 신용보증기관의 특례보증이 가장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