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0일 새벽 3시.

오는 9월이면 북한의 가족품으로 돌아가는 비전향 장기수들과 빨치산 출신 노인들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지리산 산행에 올랐다.

칠흑같은 어둠과 폭우를 뚫고 일행은 천왕봉을 향했다.

두어 시간만 더 가면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중턱.

하지만 ''산행을 중단하라''는 구조대의 긴급무전에 일행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신인영 양희철 안학섭 세 비전향 장기수 출신 노인들은 그토록 그리던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

''살아 생전 꼭 다시 천왕봉 정상에 올라 옛 동지들의 넋을 둘러보려 했건만…''

오는 13일 방영되는 EBS ''다큐 이사람''(연출 김현,오후 7시20분)은 다음달 북한으로의 송환을 앞둔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의 모습과 그들의 남한에서의 마지막 지리산 산행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봉천동 ''우리 탕제원''의 다섯 식구는 모두 간첩혐의로 짧게는 31년,길게는 41년간의 옥살이를 겪은 비전향 장기수들이다.

옥중에서 한의학을 터득해 한의원을 연 양희철 노인을 비롯 조창손 류한욱 신인영 안학섭 노인이 살고 있다.

통일이 되는 날 고향땅을 밟겠다던 소망보다 앞서 날아든 ''송환''소식으로 그들은 다시 생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다섯 식구 중 올해 늦깎이 신랑이 된 양희철 안학섭씨는 남쪽에 남지만 신인영 조창손 류한욱씨는 송환을 결심했다.

''우리 탕제원'' 식구 가운데 거동이 가능한 신인영씨와 양희철 안학섭씨는 이렇게 지난달 30일 마지막 지리산 산행에 올랐다.

젊은 날의 열정이 배인 곳,이념과 신념 때문에 수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불살랐던 지리산.

세 노인들의 산행은 산중에 죽어간 넋을 위로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김현 PD는 "장기수 노인들은 젊은 사람도 힘들어하는 산행중에도 숨만 고를뿐 단 한번도 쉬지 않았다"며 "꼭 천왕봉에 오르길 기대했었는데 날씨가 허락해주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