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아름답다.

"거짓말"정도는 명함도 못내밀 만큼 야한 섹스영화라던 소문은 종지부를 찍어야 마땅하겠다.

"몸"을 매개로 사랑의 본질을 더듬는 "미인"(감독 여균동)은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만큼 황홀한 성애를 그린다.

5분간격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섹스신은 농염한 대신에 눈이 부시다.

단언컨대 끈적하고 야하고 질펀한 영화를 기대했다면 당장 발길을 돌릴 일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

여자는 그의 품에 안겨서도 옛사랑을 잊지 못한다.

날카로운 전화벨이 울리면 여자는 미친듯이 달려나간다.

돌아온 여자는 풀이 팍 죽거나 술에 잔뜩 취한채 주저앉는다.

그런날 여자는 남자의 몸을 더욱 거칠게 원하고 그로인해 남자는 소리없이 비명지르며 여자가 "어제"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영화는 집요하게 시청각적 아름다움을 탐한다.

순백을 주조로 한 절제된 색감은 노영심의 피아노 연주와 어울려 차분한 밑그림을 그려낸다.

성애동작을 "안무"한 무용가 안은미는 손짓이나 뒤척임같은 미세한 몸짓에도 리듬을 부여한다.

여자의 살짝팬 등줄기를 스쳐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공간을 훑는 카메라의 흐름은 음탕한 애무가 아닌 몸에 대한 찬미요,떨리는 사랑고백이다.

남녀의 열감어린 눈빛이나 허리를 당겨안는 손길도 한없이 애틋하다.

달뜬 숨소리는 고급스런 선율에 실려 완벽한 화음을 낸다.

미적 효과를 계산한 CF스타일의 화면이나 푸른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몸을 겹친 남녀를 멀리서 잡아내는 앵글들은 그림처럼 예쁘다.

영화는 장자크 베넥스 감독의 "베티블루"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탐미적인 영상에 실린 폭풍같은 섹스나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사랑의 집착이 그렇다.

분위기를 일관되게 리드하는 음악의 몫,영원한 사랑을 취하는 방식,일상의 박자보다 한템포쯤 뒤처지는 느릿한 리듬감도 겹친다.

출중한 외모와 몸매로 화면을 빛낸 주연배우들은 신인다운 열정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어린 배우들이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내공이 모자랐다.

나직한 독백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 오지호(24)의 목소리에는 기다림을 아는 이의 깊이가 없다.

"나는 이 여자가 아프다"처럼 멋을 부린 대사도 관객의 마음깊이 내려앉는 대신 공중으로 날아가고 만다.

눈빛이 매혹적인 이지현(22)도 상처입은 영혼을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했다.

"미인"은 분명 한국영화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탐미적 도발을 감행해냈다.

그러나 주제의식을 앞질러간 스타일은 어딘지 공허하다.

여감독은 시사회에서 "평소 꿈꾸던 개인적인 취향에서 출발한 영화라서 재미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관객들 반응이 주목된다.

12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