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주무르며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글로벌 체제의 최대 권력자인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들이 재채기만 해도 독감에 걸린다는 약소국들.

한국 주가는 미국 증시의 명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뉴욕증시와 나스닥 주가가 춤출 때마다 더 큰 폭으로 출렁이는 게 일상처럼 돼버렸다.

우리가 국제 금융시장의 숨은 메카니즘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번역된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히로세 다카시 지음,박승오 옮김,동방미디어,8천원)은 지구촌 금융시스템을 좌우하는 인맥과 메카니즘에 관한 분석보고서다.

올해초 일본에서 출간돼 경제계와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태국 바트화 폭락 이후 아시아 경제위기에 몸서리를 친 일본인들이 미국의 실체를 냉정하게 재인식할 필요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경영 전문 저널리스트.

그는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것이 백악관이나 양대 정당이 아니라 록펠러 밴더빌트 모건 애스터 등 거대 재벌의 유산 상속인들이라고 주장한다.

벨몬트 가문부터 살펴보자.

원조격인 어거스트 벨몬트의 부인 캐롤라인 페리는 일본을 개항시킨 페리 제독의 딸.

페리 제독 동생의 손녀 조세핀은 미국 제일의 금융왕 J.P 모건의 조카와 결혼했다.

윌리엄 페리는 클린턴 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냈고 북한 핵의혹을 부추기며 군사적 긴장을 조성한 뒤 퇴임 후에도 정책조정관으로 남북한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막후에서 경제 시나리오를 "조정"했다.

저자는 캉드쉬 전IMF(국제통화기금)총재,헤지펀드의 거물 조지 소로스,루빈 전재무장관도 거대 자본가 집단의 수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까지 이들의 세력권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파헤친 7가지 메커니즘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력있는 파워집단은 천문학적 자본을 독점한 "큰 손 가문".

이들은 밴더빌트가처럼 세계의 정치.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실질적 권력자다.

이 자산가 집단의 의지에 따라 월가의 "선수"인 사업가들이 경기를 벌인다.

부호들이야말로 월가의 주식과 채권을 가장 많이 가진 "구단주"이다.

둘째는 "남아프리카의 금에 의한 자산가치".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서민들이 모은 금 2백여t은 모두 해외로 유출됐다.

러시아에서도 대량의 금괴가 빠져나갔다.

국제시장에서 금의 위력은 엄청나다.

금가격은 자본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등락한다.

현재 미국 FRB의 금 보유량은 8천t 이상이며 유럽중앙은행에도 1만t이 넘게 쌓여있다.

셋째는 "CIA(미중앙정보국)의 경제전략"이다.

국가차원에서의 미국 금융사업은 정보기관의 분석자료를 토대로 집행된다.

핵심 전략은 군 수뇌부들에 의해 청사진이 그려진다.

이들도 "선수"다.

넷째는 "유럽재벌".

미국 부호들의 인척관계는 대부분 유럽에서 파생됐다.

영국 왕실과 로스차일드가등 귀족사회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정치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다섯째는 "월가의 국제 투기인맥"이다.

이들은 국제적 내부거래를 통해 거대한 돈뭉치를 주고받고 대통령을 만들며 재무부와 중앙은행의 금고를 채운다.

여섯째 "택스 헤이븐(과세 도피처)을 이용한 지하경제"와 일곱째 "금융 저널리즘의 지배력"도 이들 권력의 핵심 요소다.

이 책은 가공할 국제 금융게임의 기법을 숱한 통계자료로 입증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제전쟁에서 국가와 개인의 재산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독감 환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