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들의 묘비명을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날 때가 더러 있다.

죽은이에 대한 예우가 지나쳐 사실에도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두고두고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죽기전에 묘비명을 스스로 지어놓은 인물들은 이런 것들을 몹시 싫어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며 후세인들에게 보내는 이별사는 한결같이 인생의 솔직한 고백에 가깝다.

"나면서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도 많아/중간에 어찌하다 학문을 즐겼는데/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즐겼는데 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받았던고/...조화타고 돌아가니 무얼 다시 구하랴"

퇴계 이황이 죽기 얼마전 적어 놓은 이 자명은 96자의 한시 형식이다.

이 글속에서 퇴계는 여전히 성현의 말씀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아직도 스스로 모르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6.25때까지 살았던 경북 경산의 유학자 탁와 정기연 역시 묘비명을 미리 써 놓았던 선비.

탁와는 자신이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해 인간으로서 완성품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세상에 자기를 아는자가 있는가 없는가를 반문하면서 "내가 자신을 아는 것으로 족하니 남이 알고 모르고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로 비명을 끝맺고 있다.

이 두 학자의 자찬 묘비명은 우선 자신의 심신수련과 학문을 닦는 위기지학을 강조하는 선비 정신을 읽을수 있게 한다.

사법연수원이 최근 6백93명의 31기 연수원생들에게 스스로 인생설계를 묘비명 형식으로 쓰게 해 "아름다운 약속"(비매품)이란 책으로 묶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초대여성대법관"이 되겠다거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검찰총장"이 되겠다는 현실과도 있었지만 사회의 아픔을 이해하고 연수생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심신수련과 학문연마보다는 남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가 옛사람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묘비명을 쓸 나이가 아닌 이들이 주문에 맞춰 일률적으로 쓴 일생설계식 묘비명에 과연 어느 정도의 진실이 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끝내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