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1978년에 제정된 공직자 윤리규정(Ethics in
Government Act)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공직자들은 자기의 자산과 부채(1만달러가 넘는 크레디트
카드상의 부채까지 포함)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 부통령 의회의원 그리고 군장성은 물론 이밖의 고위 공직자들도
이 규정의 적용대상이다.

선거직에 입후보하는 사람들 또한 이 규정이 적용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규보수 이외에 다른 소득이 있을 경우, 이것도 모조리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된 사외이사직으로 얻은 소득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보유에 따른 소득을 빠짐없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혹시나 자신의 재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입안이나 집행가능성을 국민들
이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감시와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싫은 공직자에게 다른
선택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나몰라 펀드(blind trust)"다.

자기의 금융자산을 모조리 폐쇄펀드에 맡겨 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금융자산의 변동상황이나 이로 인한 소득변화를 일일이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아도 되며 쓸데없는 오해에서 면제받을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다.

폐쇄펀드에 스스로의 금융자산을 맡기는 공직자는 다음 사항을 지켜야 한다.

첫째, 공직자는 우선 자기공직과 무관한 사람이나 법인을 수탁인(trustee)
으로 선정해야 한다.

일단 선정된 수탁인은 이 자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신탁인(이 경우 공직자)
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수탁인이 최선을 다한다는(due diligence)는 성실의무를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에도 신탁인의 허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수탁인은 수탁된 자산에 대한 1백% 재량권(discretion)을 갖고 있는 셈이다.

둘째, 수탁인은 신탁인에게 매분기마다 현재의 자산상태를 요약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서는 안된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입안이나 법집행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신탁인은 수탁인과 구두로 대화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화는 서면으로만 가능하다.

서면대화를 하는 경우에도 돈이 필요하니 일부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으로
만들어 주시오 등등 극히 제한적인 요구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단 자산을 맡겼으면 나몰라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페쇄펀드에 스스로의 금융자산을 맡기려 하는 경우에도
공직자 윤리국(Ethics Office)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와 수탁자간의 관계가 특수 관계인지 여부는 물론,
맡겨진 자산의 상태가 신청서류와 일치하는지 등을 심사받게 된다.

일례로 빌 클린턴 대통령은 Paul Rudman Trust Comapny와 나몰라 펀드계약
을 맺고 있다.

이 회사가 클린턴 몫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종목이나 채권종목은 규정에
따라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클린턴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자기재산의 증식여부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해 놓기 위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98년 세금정산보고를 보면, 50만4천1백9달러를 벌어
8만9천9백51달러를 세금으로 납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는 이 신탁자산에서 발생한 1)이자와 2)배당금 그리고 3)금융자산의
가치상승(capital gains)에서 비롯된 소득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항목은 Paul Rudman Trust가 요약해 준 결과를 세무서에 그대로
신고한 것일 뿐이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도 장관재직시 Northern Trust 및 Blind Trust와
나몰라 펀드 계약을 체결했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로렌스 서머스 현 재무장관은 물론 거의 모든
고위 공직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신탁회사들과 Blind Trust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계약을 하게 되면 일년에 약 5만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그 비용을
개의치 않는 것이 미국공직사회의 분위기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속편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매거나 감나무 밑에서 갓끈매지 않는다는 자세다.

일본에서는 증권관련기관의 임직원들도 주식투자를 할 수있다.

다만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할 경우 증권거래법상의 내부자거래금지
규정에 따라 처벌받을수 있다.

내부자 거래를 제외하고는 주식투자는 원칙적으로 자유다.

그러나 대장성 증권국을 비롯 증권거래소 증권업협회 등은 내부규정으로
직원의 주식투자를 금지시키고 있다.

"본인의 이익과 관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에 참여할수 없다"는
변호사법의 기본원칙을 준용한 것이다.

일본에선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이 증권투자와 관련해 구설수에 간혹 오르
내리고 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도 형과 비서관이 일본내 싯가총액 1위인 NTT도코모
(이동통신)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홍역을 치루고 있다.

오부치 총리의 형과 비서관이 갖고 있던 죠모통신서비스의 주가가 NTT도코모
와의 합병으로 2백배나 오르면서 내부 정보이용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계로 정계의 주목을 받아온 아라이쇼케이 중의원은 닛코증권의 주식
보유가 발단이 돼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금융기관이 거꾸로 정계거물 등의 자금을 운용해줘 말썽이 생긴 사례도
있다.

노무라증권과 일본장기신용은행 등은 정계거물등을 대상으로 VIP 구좌를
운영,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윤리규정 등으로 인해 정치인 이외의 공직자가 증권매매로
거액을 벌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도쿄=김경식 특파원.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