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배로 < 하버드대 교수 >

미국의 통화정책은 인플레가 두자리 숫자에 바짝 다가섰던 80년대 초반
중대한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던 폴 볼커는 인플레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특히 82년 시작된 경기후퇴기를 눈앞에 둔 시점이어서 인플레를 잡기 위한
긴축통화정책은 매우 힘들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물가는 뛰고 경제성장은 둔화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사상
초유의 이상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같이 어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든지 긴축을 통해 물가를 잡든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가지 정책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볼커 전의장과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은 인플레를 향해 총을 뽑아들고
마침내 인플레를 잡는데 성공했다.

87년 볼커 후임으로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리 의장에 오른 이후 미국 경제는
탄탄한 경제성장을 이룩해왔다.

고성장에다 저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른바 "신경제"가 8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린스펀이 해야 할 일은 전임자인 볼커에 비해 훨씬 쉬웠다.

볼커가 닦아놓은 저물가 기조를 유지하기만 하면 됐다.

그럼에도 그린스펀은 지금 미국 경제계에서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그린스펀은 그동안의 통화정책에서 일관된 원칙을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나는 연준리의 정책결정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간단한 경제모델
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연준리의 금리조정여부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였다.

반면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 임금상승률 금값 등은 연준리의
금리정책을 예측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 인플레 여부를 보여주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연준리의 정책결정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모델은 또 고용증가율이 높아질수록 금리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높은 고용증가율은 미래에 물가상승을 촉발하게 되고 자연히 금리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준리의 금리정책과 신경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높은 생산성이나 빠른 기술발전은 통화정책의 변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낮은 실업률이 인플레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연준리는 실업률이 떨어지면 금리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

주가변동도 연준리의 금리정책에 변수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보면 연준리의 행동은 일견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그린스펀 의장이 그동안 주가가 과대평가됐다고 수차례에 걸쳐 경고해 온
것이 특히 그렇다.

모델에서는 주가상승이 인플레를 예측할 수 있는 적절한 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과 인플레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변수들은 금리와 경제성장률의 관계나 미국 달러가치의 변동에 대한
체계적인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연준리가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11월15일의 경우
이 모델에서는 12월중 연방기금금리가 연 5.38%로 추정됐다.

지난 3.4분기에 물가상승률이 낮긴 했지만 11월초에 발표된 10월 실업률이
낮아 금리 예상치가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연준리는 16일 연방기금금리를 연5.25%에서 연5.50%로 올렸다.

모델의 금리예상치가 연준리의 실제 인상폭(0.25%포인트)을 1백% 맞히지는
못했지만 인상할 것이라는 사실은 정확히 맞혔다.

연준리의 금리인상에 대한 예상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선물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11월15일 선물시장에서는 12월물 연방기금금리가 연5.42%를 기록했다.

시장에서 이미 연준리가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연준리가 지난달 16일 금리를 인상한 직후 선물시장에서 12월물과 2000년
1월물 연방기금금리 선물은 연5.50%에 거래됐다.

그러나 내년 2월물은 연5.58%였다.

시장에서는 3분의 1의 확률로 내년 2월초에 연준리가 금리를 연5.75%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나의 모델에서는 내년 2월 연방기금금리가 연5.41%로 예측됐다.

연준리가 2월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에서 3분의 1의 확률로 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무튼 내년 2월의 금리동향에 대해서는 모델 예측치와 시장 예상치가
정반대로 엇갈린다.

나의 모델 예측치가 맞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선물시장에서 금리선물에 대해
"매수 포지션"을 취해야 할 것이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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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실린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교수의 기고문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