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국정감사 업무현황 보고자료에서 중장기적으로 어음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것은 원론적으로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 어음제도를 큰 부작용 없이
폐지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통화신용정책을 책임진 한은은 원론적인 방향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어음
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내야 할 것이다.

어음결제액은 지난해 7천5백5조8천억원, 올해 9월말까지 7천6백91조2천억원
에 달하며 전체 상거래에서 차지하는 어음결제비중도 57%에 달한다고 한다.

그나마 IMF사태로 기업도산이 급증하는 바람에 어음결제 규모가 지난 97년의
9천5백22조원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 이정도다.

어음유통에 따른 가장 큰 부작용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납품한뒤 어음을 받기
까지의 기간이 평균 30일을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지난해에는 50일이 넘을
정도로 악화됐고, 어음만기도 평균 90알 정도에서 지난해에는 1백10일이
넘었다.

이렇게 되면 어음수취인인 중소기업이 평균 5달동안의 이자를 부담할뿐만
아니라 그만큼 자금회전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가지 부작용은 어음을 발행한 업체가 부도나면 연쇄도산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제난이 극심했던 97년에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의 도산으로
인해 수많은 관계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했던 것을 들수 있다.

하지만 워낙 어음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데다 결제금액도 많아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특별위워회가 출범한 직후 만기가 60일을 넘는 어음에 대한
할인율을 크게 올리고 한국은행 총액대출 지원대상에서 어음결제일 제한규정
을 없애 어음할인을 촉진했지만 중소기업의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더구나 금융불안이 큰 현재 상황에서 섣불리 어음유통을 규제했다가는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들만 피해를 보기 쉽다.

따라서 어음제도 개선대책은 우선 융통어음 발행을 규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진성어음 발행도 선진국처럼 팩토링이나 기업간 신용거래로 유도하는 것이
옳다.

어음제도의 부작용은 원래 신용수단인 어음을 지급결제수단으로 이용한 탓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외형성장 위주로 무리한 경영을 하지말고 가능한 한 현금흐름
범위안에서 신용거래 규모를 적절히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