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Mecenat)는 "문예 옹호"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기업의 예술후원활동을
말한다.

세계적 패션회사 중에는 이 메세나를 꾸준하게 펼치며 젊은 창조자들을
돕는 기업들이 여럿 있다.

특히 오랜 전통과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명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일수록
남보다 많은 예술후원활동을 벌여 왔다.

이같은 사실을 되새겨 볼 때 패션과 예술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명품업체들의 메세나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거나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의
일방적이고 단순한 지원방식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곳이 많다.

여러 형태의 공동 작업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품과 일반 소비자 그리고
기업이 서로 연결고리를 갖게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에르메스가 좋은 예다.

에르메스는 조각가 화가 사진작가 무용가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개척자들을
후원하며 교류관계를 유지한다.

지난 6월초 국내에서 열린 프랑스 여류화가 아니에스 레비의 전시회에는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회장과 가죽 장인 등 에르메스 사람들의 초상화가
여러개 걸려있었다.

이 화가에게 에르메스는 중요한 스폰서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무 조각가 크리스티앙 르농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에르메스의 상징인 말조각(페가수스 )외에도 이 브랜드
의 히트 아이템인 켈리백과 스카프가 나무로부터 움터나오는 형상의 조각
등이 있다.

고객에게 순은으로 만든 주전자와 바오밥나무 씨앗을 선물하는 전통에서
알 수 있듯 나무는 에르메스 기업정신의 상징물이다.

에르메스는 조각가 르농시아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진작가 데니스 펠릭스와 기시노 마사히코, 현대 무용가인
프랑수아 라피노 등이 에르메스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에르메스의 기업 이미지를 전파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는 독일의 유명 미술잡지에 자주 인터뷰가 실릴
정도로 이름난 미술작품 수집가이자 후원인이다.

그는 브랜드 고유의 깨끗하고 절제된 라인이 조셉 뷔이라는 아티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또 최근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는 예술과의 교류가 없는 패션은 성장하지
못한다며 패션기업의 예술지원 활동을 강조했다.

질 샌더는 이 인터뷰에서 "21세기는 협력의 시대며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며 패션이 더이상 옷과 액세서리
에 국한된 실용예술분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루이뷔통 또한 메세나를 활발하게 전개하는 패션업체중 하나로
꼽힌다.

루이뷔통은 특히 금세기 최고로 불리는 작가들을 직접 상품 디자인에
참여하게 해 명품을 남긴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루이뷔통의 펜은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누스카 헴펠이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호텔로서는 최초의 부티크 스타일인 런던 블레이크와 수도원 분위기의
헴펠 호텔을 설계한 미니멀 아트의 대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루이뷔통은 이 펜 컬렉션의 아시아 런칭 기념행사에 작가 화가 등 펜과
관련한 동양의 유명인사들을 다수 초청하기도 했다.

최근에 이 회사가 발표한 뉴욕 트레블 노트북에는 쿠바의 예술가 루벤
톨레도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 공책에는 톨레도가 직접 그린 뉴욕의 가볼만한 곳 소개와 뉴욕인의
다양한 일상을 포착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수록돼 있다.

루이뷔통은 뉴욕의 비지오네르 갤러리와 파리의 카르스통 그레브 갤러리에서
트레블 노트북과 함께 톨레도의 그림전시회를 열었다.

루이뷔통측은 뉴욕전시회에서 판매된 작품의 수익금은 에이즈 퇴치를 위해
쓰여졌다고 밝혔다.

이는 패션기업의 메세나가 다시 아름다운 사회운동과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중 하나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