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브레이스 < 전 하버드대 교수 >

인류는 금세기에 많은 것을 이룩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큰 진보들이 있었다.

진보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인류는 현재 컴퓨터를 포함해 지적능력을 뒷받침해 줄 기술발전을 자축하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큰 성과라면 이런 것들을 토대로 이룬 경제적 성공이다.

그러나 금세기와 지난 밀레니엄(천년)은 분명하고도 시급한 과제 둘을
해결하지 못한채 저물어가고 있다.

이중 하나는 엄청나게 많은 극빈자 문제다.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에도 극빈자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한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시골에 흩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대도시에 있다.

풍요로운 도시에서의 가난은 금세기가 낳은 가장 고통스러운 경제사회
유산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있다.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하면 된다.

적어도 미국같은 부국들은 국민 전체를 가난에서 건져낼 힘이 있다.

최저 소득을 보장하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자들의 휴양시설이 존재하듯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리조트도
있어야 한다.

현대 경제 시스템에서는, 특히 미국에선 소득 분배가 쉽지 않다.

최고 소득층에 부가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불평등의 원인과 이를 풀 방법을 찾는 논의는 활발하다.

이러한 논의가 더 집중적으로,보다 활발하게 진행돼야 한다.

사람들이 부자의 근로의욕을 고취하려면 그의 소득을 보장하고 동시에
세금을 줄여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의문을 하나 갖게 된다.

그것은 고소득자가 세후소득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끔 더 높은 누진 소득세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주장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평등과 가난은 국제적으로는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는 금세기에 이룩된 성과중 식민지주의의 종언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효율적인 정부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식민통치의 종말은 정부의 부패나 아예 정부의 부재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효율적인 통치권의 부재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은 없다.

금세기 초반에 식민지에서 벗어난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 아프리카의 가난이 더 심각한 것은 아프리카가 식민지 잔재를 상대적
으로 덜 털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필요할 때 같은 인류의 고통과 재난을 막아낼 메커니즘을 가져야
한다.

우선 경제적 지원체계가 있어야 하며 유엔이 지원체계의 핵이 돼야 한다.

그러나 지원이 진실하지 않고 이를 수행할 유능한 정부가 없다면 경제지원
효과는 미미하다.

이것이 바로 금세기와 이번 천년이 풀지 못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는 미국탓이 크다.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체계 수립에 앞장서야 할 미국은 대외정책중
상당수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정서를 기초로 시행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의 대외정책은 세계정세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앞서 유엔의 역할을 강조했다.

나는 유엔이 최근 발칸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금세기에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과제는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이다.

지난 1백년동안, 특히 전후 50년, 인류가 남긴 유산중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것이 바로 핵무기다.

핵무기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화된 존재인 인류를 언제라도 멸망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 위험을 알면서도 핵무기의 보유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다른 나라들에 정신을 차리고 생존을
생각하는 정책을 펴라고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난해 핵미사일 발사실험을 했을 때 미국의 입장은
무척 난처했다.

그들이 "너희(미국)는 왜 핵무기를 갖고 있느냐?"라고 반문할 때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곧 막을 내릴 이 세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손에 떨어진 지상최대의 과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핵무기의 위협은 이제 막 끝나려는 세기의 가장
심각한 유산이다.

새 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 인류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사라지는 아마게돈의 위험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 >

-----------------------------------------------------------------------

<>이 글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전 하버드 및
프린스턴대 교수가 최근 영국의 런던경제대학원(London School of Economics)
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한 연설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