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피셔 <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

아시아지역 경제는 지난 몇 달간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금융위기의 중심부에 있던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경기
전환점"을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경제회복은 44년만에 맞이했던 자유총선을 평화적으로 치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러한 회복은 재정 및 금융부문의 확대정책과 해외수출 호조에 힘입었다.

직접투자나 증시투자 등의 형태로 각국으로부터 들어온 해외자본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각국의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복의 열쇠는 대외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내부적 구조개혁을 얼마나 효과적
으로 추진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재벌들의 구조조정이 가장 중요하다.

아시아지역 국가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은 올 1.4분기에
예상을 뒤엎고 1.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갔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라섰는지의 여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소비진작을 위한 건설적인 정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부실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작업도 한창이다.

중국은 기대이상으로 위기에 잘 대처해 왔다.

위안(원)화 평가절하라는 불안요소가 잠복해 있지만 중국경제는 아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당국은 또 금융분야의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아시아 위기는 과연 끝났다고 볼 수 있는가.

이 시점에서 확실히 "예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유동적이고 불안하다.

경제회복의 지속여부는 대외경제 여건 개선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경제정책
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이다.

아시아 일부에서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경기회복을 틈타 경제개혁의 강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를 겪은 많은 나라들은 보다 광범위한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경제가 안정과 성장으로 접어들고 IMF의 역할이 불가피하게 줄어들게
됨으로써 각국은 끊임없는 개혁프로그램을 실정에 맞게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각국이 개혁을 멈추지 않는 한 IMF는 개혁과정을 지원할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외부환경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지난 2년간 미국은 세계 경제의 보루역할을 담당해 왔다.

미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선언이 세계
경제위기로 파급되는 것을 막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언제까지나 이러한 방파제 역할을 맡을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 경제가 성장둔화기로 접어들 경우 유럽과 일본이
미국의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지난해 일본 정부가 실시한 은행 구조조정이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험부문은 보다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기회복은 아직 확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다.

지금 단계에서 회복에 대한 과신은 제2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앞으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경제성장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한 답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고임금에 바탕을 둔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 그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아시아지역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더라도 과거 몇 십년간 누렸던
고도 성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금융 기업 정부 부문의 개혁을 지속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IMF도 투명한 경제지표,재무지표 등을 확보해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개혁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정치지도력도 필수적이다.

국민들의 대중적인 지지가 있어야 개혁을 성공시킬수 있다.

이를 위해 극빈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지난 80년대 중남미는 아시아보다 더욱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중남미는 경제개혁으로 당시 위기를 극복, 경제 체질을 강화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보다 굳건하게 자리잡은 것도 이 때였다.

아시아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정리=김재창 기자 char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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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탠리 피셔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가 지난 17일 홍콩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세미나에서 발표한 기조연설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