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의 묘라는 글자는 참 묘하게 만들어진 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썩좋아할 것은 못된다.

"묘수를 세번 두면 반드시 진다"는 바둑격언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판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맨 끝에 두게되는 묘수.

그걸 세번 두면 진다는 아치를 바둑깨나 두는 사람들은 안다.

대세가 몰려 묘수에 묘수를 거듭해야하는 판이라면 결국 지게되는게 당연
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평범하게 두어나가야지 국면을 어렵게 만든뒤 묘수로
이를 타개하려들지 말라는 얘기는 바둑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통용된다.

경제정책에서도 묘수는 대체로 결과가 좋지않았다.

금융실명제란 것만해도 그렇다.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82년 장영자사건때다.

빌려주는 돈의 두배에 해당하는 어음을 담보로 잡은 뒤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킨 장여인에게 수많은 기업들이 놀아난게 그 사건이었다.

그만큼 사채가 광범위하게 통용됐던게 당시 여건이었는데 이를 단칼에
해결할 금융실명제를 내놨으니 대단한 묘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는 아직 우리 현실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정이 내려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다시 유보하게된 까닭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현실에 맞지않는 처방은 그 의도와는 달리 부작용만 극대화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김종필 총리주재로 열린 국민연금 관련회의에서 자영업자 소득의 국세청
통보의무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것은 82년의 실명제
구상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총리실산하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쉽게
짐작이 간다.

국민연금확대로 이래저래 손해를 보게된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나 반발이
적지않은 반면 자영자소득을 파악해 연금보험료를 제대로 내게할 방법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대마가 몰린 대국자처럼 "묘수"에 허기진 상황일 것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자영자소득파악이 금융자산 등을 국세청에 통보되도록 하는 법만
만들면 가능하고 그렇게할 경우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

금융실명제 경험을 되살리면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1천만명을 웃도는 자영소득자는 금융실명제에서도 최대 장벽이었다.

그들의 소득을 드러나게 할 방법으로서 금융실명제도 사실상 한계가 있는
데다 그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종합과세를 유보,
사실상 금융실명제의 형태화를 용인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특별법 제정이
과연 적절한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그런 특별법이 필요하고 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새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금융종합과세를 실시하는 것이 오히려 순리다.

자영소득자로 분류되는 1천만명중에는 개인택시기사 일용근로자와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 등도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들의 금융자산을 자영소득자라는 이유로 국세청에 통보하는 등 별도관리
한다는 것은 세정상 실익도 없을 뿐 아니라 형평성이라는 차원에서도 도무지
말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 손실처리와 관련, 금감위가 이건희 삼성회장의 개인재산 출연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는 또하나의 묘수에 대한 우려를 갖게한다.

삼성자동차로 인한 엄청난 은행손실을 결국 공적자금으로 메워야한다는 점을
되새기면 이회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국민정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회장 사재출연을 강제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를 유발할 것이 분명하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보유주식이상 손 해를 보지않게 돼 있는 유한책임을
바탕으로하는 주식회사제도와 사원재산권 등 자본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이 어려운 것은 상충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잘했다고 노비가 다툼에 대해 너무 옳고 또 너도 옳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황희정승처럼 넘어가기에는 현실경제의 갈등과 상충은 너무나
첨예한 경우가 적지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도 정책당국자들은 상황판단과 방향선택의 기준이 명료해야
한다.

관념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이어야하고 그 수단이 합법적이어야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묘수를 두려는 성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따지고보면 현실적합성보다는
관념적인 가치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라는 관념적인 허울에 취해 현실도 감안하지 않고
국민연금대상을 넓혔기 때문에 또 묘수처럼 보이는 악수를 둬야하는 꼴이 되
풀이해서는 안된다.

거듭말하자면 묘한 모양의 돌출적인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 경제팀에 하고 싶은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