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가 갖는 의미는 크다.

과거 기업들은 금리를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은 6-7%에 비해 불과한데 우리는 그 두배나 되는 금융비용을 물고
어떻게 기업활동을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제 7%대로 금리가 떨어졌다.

한국경제로선 호기가 아닐수 없다.

너무 낮은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으나 저금리 자체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이 호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하는 문제만 남았다.

단순히 금융호황에 그쳐선 안된다.

증시와 부동산이 일시적으로 과열하는 데 불과해선 경제의 진정한 회복을
기대할수 없다.

국제수지도 좋다.

수입이 줄어든 탓도 있으나 국제수지 흑자기조는 안정적 경제운용을 가능케
한다.

최근 원화가치가 오르는 데서 이를 확인할수 있다.

원화가치 상승이 해외여행을 늘리고 소비재 수입을 확대하는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과거 80년대말에 국제수지 흑자의 호기를 놓쳐버린적이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의 원인은 80년대말 90년대 초기부처 배태된 것이
아닌가.

저금리로 주식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호기에 물가를 안정시켜 성장기반을
다져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초저금리가 갖는 중요성은 새로운 성장의 원천을 찾는
발판을 제공한다는데 있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성장은 대기업들이 이끌어 왔다.

대기업들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해 고용과 투자를 일으켰다.

대기업에 의한 대규모 고용은 사회안전망의 역할도 했다.

퇴직금 제도가 노후 사회보장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에게 더이상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구조조정으로 대기업의 고용흡수력은 크게 낮아졌다.

기존 사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이제 그 역할은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이 분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저금리 기조
의 정착이 필요하다.

IMF 체제의 수렁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려면 한국경제의 에너지와
지식이 집약된 "21세기 성장엔진"이 필수적이다.

경제 구조조정을 단순한 비용절감이나 인력감축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새로운
기폭제를 찾는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김인중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이전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투자
가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집중됐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규모 자본만 투입하면 손쉽게 따라올 수 있는 분야였다.

자동차 가전 석유화학 철강등이 그렇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이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게 되자
수출전선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한국경제는 붕괴위기를 맞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21세기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은 확실한 비교 우위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

기술과 지식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IMF란 황무지에서 새로운 싹을 키워낸 강한 중소기업들이 여기에 해답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벤처기업인 디지털캐스트는 세계 최초로 PC파일을 저장시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MP맨"을 개발해 냈다.

이 회사는 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연간 1백%를 웃도는 매출성장을 올리고
있다.

국산영화인 "쉬리"는 스크린쿼터제 해제위기란 긴박한 상황에서 국내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컴플렉스를 단숨에 깨버리고 일본에
막대한 수출실적까지 올렸다.

한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휴먼웨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성장동력
을 만드는게 경기회복의 중장기 과제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집약적 산업의 중요성이 무시돼서는 안된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지식집약 산업 육성에만 몰두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대기업들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지난 30여년간 대기업들이 구축해놓은 이 분야에서의 입지를 지켜나가야
한다.

그 길은 생산성 향상 투자에 있다.

임동춘 현대경제연구원 경영분석실장은 "IMF 이후 대기업의 투자의욕 자체가
약화된 것이 문제"라며 그 탈출구를 생산성 향상 투자에서 찾을 것을 제안
한다.

대기업들도 설비확장 투자는 불가능하지만 설비효율화 투자의 여지는 많다는
것이다.

이미 대기업들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정의용 이사는 "올해 10-12억달러를 설비개선에 투자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책적 뒷받침이다.

대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투자를 유도하려면 미시적 측면에서의 정책이 필요
하다.

지금도 정부는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반응
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차제에 기업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귀담아 들을 필요
가 있다"(조홍래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아울러 인력유출 방지도 시급하다.

한국이 지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적자원이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유능한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훼손된 성장잠재력을 그런 분야에서 복구시켜야 한다.

또 국내대기업이 투자할수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직접투자유치도 복합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항이다.

경기도 알차게 살리면서 새로운 경영기법도입,고용창출 등의 효과도 거둘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이 초저금리의 이점이 극대화될수
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업들이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주식이나 금융
시장에서 싸게 얻은 자금을 실물경제를 돌리는데 쓰기 보다는 주식이나 금융
시장에 다시 투자해버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돈이 기업과 금융사이를
맴돌아 버블만을 쌓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선된 금융여건이 실물경제의 투자증가로 이어질때만 금융장세가 실적장세
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경기회복이 선순환을 그릴 수 있게 된다는게 그의 지적
이다.

반대로 기업이 일시적인 여건 호전에 취해 IMF 이전과 같은 무모한 확장정책
을 취할 경우 쇠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IMF 이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
다"며 "해빙기의 등산이 가장 위험하듯이 지금 상황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임혁 기자 limhyuck@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